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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히틀러의 서명과 ‘위안부’
2026. 03. 29. 오후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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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서명 문서 없다고 유대인 비극에 책임 없나
김병헌 활동과 구속 보며 위안부 문제 본질 또 생각
폴란드 역사와 문화에 관해 알아볼 일이 최근 생겼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급한 대로 폴란드 영화 또는 폴란드에 관한 영화를 내리 15편 봤다. 이들 영화를 접하며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에서 벌어진 소름 끼치는, 끔찍한 학살에 얽힌 장면을 많이 보았다. 그 과정에서 몰랐던 것도 알게 됐다. 2차 대전 때 독일 나치 총통 히틀러가 유대인 대학살(이른바 최종 해결책·the Final Solution)을 지시·명령하면서 서명한 문서 자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게 뭔 소린가 싶어 우선 복수의 AI에게 물어보니, 맞단다. 히틀러는 유대인 대학살 명령 문서에 사인한 적이 없다. 나치 친위대(SS) 우두머리 하인리히 힘러가 설계·집행했고,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실무를 총괄했다. SS 중령으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설계·운영·학살을 맡은 루돌프 회스 같은 인물도 빼놓을 수 없다.
나치 수장인 히틀러가 서명한 유대인 대량 학살 공식 지시 서류는 없으니, 히틀러는 무죄인가? 그건 히틀러와 무관한가? 이런 질문을 하니 AI조차 흥분하는 것 같았다. 이런 대답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것이 히틀러의 책임이 없다거나 그가 몰랐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히틀러가 책임이 없었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오늘날 역사학계의 정설은 히틀러가 최종 결정권자이자 정치적·이념적 주도자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나중에 제기될 수 있는 책임 소재 문제나 인륜 차원의 비판이 ‘총통’에게 향하지 않게 차단하는 차원에서 히틀러가 서명한 서류가 남지 않게 미리 작업을 해둔 것이다. 조작인 셈이다. 침략을 많이 해본 나라, 전쟁을 많이 일으켜본 나라는 이런 조작을 굉장히 잘한다. 침략 국가·전쟁 국가는 이런 조작이 없으면 버틸 수 없다. 조작은 시스템 안에 자리 잡고 구조화된다. 침략당하는 나라는 애초 조작할 필요가 없다. ‘나쁜 놈들’한테 당하는 판에 뭘 조작할 건가? 있는 대로 기록하면 된다.
이런 원리가 적용되는 사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전쟁국가’였던 일본은 군국주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여러 가지가 필요했는데, 그중 이른바 ‘위안부’도 있었다. 그러나 ‘위안부’를 군국주의 일본 정부나 군 차원에서 동원·운영하면 뒤에 큰 문제가 생긴다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민간에 의한 모집 - 자발적 매춘부’라는 구도로 조작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조작을 했다. ‘봐라! 일본 정부나 군대가 한 게 아니다. 민간이 자발적 매춘부를 모집해 온 거다’는 대응의 틀을 미리 만든 것인데 ‘히틀러가 서명한 서류는 없다’와 비슷하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가 되기로 했을 여성이 얼마나 됐겠나? 게다가 일본 군대·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에 개입하고 주도한 증거가 많고, 이는 국제사회에서 공인됐다. 1993년 이뤄진 고노 담화가 대표 사례다. 당시 고노 요혜이 일본 내각 관방장관은 공식 담화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 정부 차원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 뒤로 나온 많은 증거와 국제사회의 대응은 고노 담화와 궤를 같이한다.
나는 지금 사진가 안세홍이 2020년 펴낸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글항아리)를 읽고 있다. 저자는 지난 25년 동안 일본군 성노예 피해 아시아 여성 140명을 만났는데, 그중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에서 인터뷰한 21명의 사연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아프고 안타까운 육성을 읽으며 나는 자꾸 최근 있었던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이라는 이름의 단체 대표 김병헌이 지난 20일 구속됐고, 지난 26일 검찰로 구속 송치됐다는 소식이다.
그는 ‘위안부’ 할머니를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등 명예훼손·사자명예훼손, 아동복지법 위반,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다. 이 사람들이 바뀔 것으로 기대할 수 없지만, 이런 일을 하는 부류에게 분노와 함께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이 아주 약할 때, 매우 강했던 일본을 충격적으로 인식해 그들을 ‘위대하게’ 여기고, 그런 일본에 반대하거나 비판했던 (주로 진보적인) 세력에 대한 혐오가 겹쳐 일본 인식이 ‘과거’에 딱 멈춘 ‘반일 종족주의’류 인식 상태라고 나는 본다.
지난주 서울에 가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오래 있었다. 한국 역사·문화·예술을 담은 전시관을 두루 본 뒤, 3층으로 가니 세계문화관이 있었다. 이런 전시관 구성이 좋았다. 우리 유물·유산뿐만 아니라 그리스·로마·일본·중국·동남아·중앙아시아·인도 등의 문화를 담은 전시물을 함께 보며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정돈되는 기분이 들었다. ‘위안부’ 문제도 편협한 극우 시선에 갇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병헌 활동과 구속 보며 위안부 문제 본질 또 생각
폴란드 역사와 문화에 관해 알아볼 일이 최근 생겼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급한 대로 폴란드 영화 또는 폴란드에 관한 영화를 내리 15편 봤다. 이들 영화를 접하며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에서 벌어진 소름 끼치는, 끔찍한 학살에 얽힌 장면을 많이 보았다. 그 과정에서 몰랐던 것도 알게 됐다. 2차 대전 때 독일 나치 총통 히틀러가 유대인 대학살(이른바 최종 해결책·the Final Solution)을 지시·명령하면서 서명한 문서 자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게 뭔 소린가 싶어 우선 복수의 AI에게 물어보니, 맞단다. 히틀러는 유대인 대학살 명령 문서에 사인한 적이 없다. 나치 친위대(SS) 우두머리 하인리히 힘러가 설계·집행했고,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실무를 총괄했다. SS 중령으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설계·운영·학살을 맡은 루돌프 회스 같은 인물도 빼놓을 수 없다.
나치 수장인 히틀러가 서명한 유대인 대량 학살 공식 지시 서류는 없으니, 히틀러는 무죄인가? 그건 히틀러와 무관한가? 이런 질문을 하니 AI조차 흥분하는 것 같았다. 이런 대답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것이 히틀러의 책임이 없다거나 그가 몰랐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히틀러가 책임이 없었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오늘날 역사학계의 정설은 히틀러가 최종 결정권자이자 정치적·이념적 주도자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나중에 제기될 수 있는 책임 소재 문제나 인륜 차원의 비판이 ‘총통’에게 향하지 않게 차단하는 차원에서 히틀러가 서명한 서류가 남지 않게 미리 작업을 해둔 것이다. 조작인 셈이다. 침략을 많이 해본 나라, 전쟁을 많이 일으켜본 나라는 이런 조작을 굉장히 잘한다. 침략 국가·전쟁 국가는 이런 조작이 없으면 버틸 수 없다. 조작은 시스템 안에 자리 잡고 구조화된다. 침략당하는 나라는 애초 조작할 필요가 없다. ‘나쁜 놈들’한테 당하는 판에 뭘 조작할 건가? 있는 대로 기록하면 된다.
이런 원리가 적용되는 사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전쟁국가’였던 일본은 군국주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여러 가지가 필요했는데, 그중 이른바 ‘위안부’도 있었다. 그러나 ‘위안부’를 군국주의 일본 정부나 군 차원에서 동원·운영하면 뒤에 큰 문제가 생긴다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민간에 의한 모집 - 자발적 매춘부’라는 구도로 조작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조작을 했다. ‘봐라! 일본 정부나 군대가 한 게 아니다. 민간이 자발적 매춘부를 모집해 온 거다’는 대응의 틀을 미리 만든 것인데 ‘히틀러가 서명한 서류는 없다’와 비슷하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가 되기로 했을 여성이 얼마나 됐겠나? 게다가 일본 군대·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에 개입하고 주도한 증거가 많고, 이는 국제사회에서 공인됐다. 1993년 이뤄진 고노 담화가 대표 사례다. 당시 고노 요혜이 일본 내각 관방장관은 공식 담화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 정부 차원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 뒤로 나온 많은 증거와 국제사회의 대응은 고노 담화와 궤를 같이한다.
나는 지금 사진가 안세홍이 2020년 펴낸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글항아리)를 읽고 있다. 저자는 지난 25년 동안 일본군 성노예 피해 아시아 여성 140명을 만났는데, 그중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에서 인터뷰한 21명의 사연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아프고 안타까운 육성을 읽으며 나는 자꾸 최근 있었던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이라는 이름의 단체 대표 김병헌이 지난 20일 구속됐고, 지난 26일 검찰로 구속 송치됐다는 소식이다.
그는 ‘위안부’ 할머니를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등 명예훼손·사자명예훼손, 아동복지법 위반,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다. 이 사람들이 바뀔 것으로 기대할 수 없지만, 이런 일을 하는 부류에게 분노와 함께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이 아주 약할 때, 매우 강했던 일본을 충격적으로 인식해 그들을 ‘위대하게’ 여기고, 그런 일본에 반대하거나 비판했던 (주로 진보적인) 세력에 대한 혐오가 겹쳐 일본 인식이 ‘과거’에 딱 멈춘 ‘반일 종족주의’류 인식 상태라고 나는 본다.
지난주 서울에 가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오래 있었다. 한국 역사·문화·예술을 담은 전시관을 두루 본 뒤, 3층으로 가니 세계문화관이 있었다. 이런 전시관 구성이 좋았다. 우리 유물·유산뿐만 아니라 그리스·로마·일본·중국·동남아·중앙아시아·인도 등의 문화를 담은 전시물을 함께 보며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정돈되는 기분이 들었다. ‘위안부’ 문제도 편협한 극우 시선에 갇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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