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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행복한 나라, 살고 싶은 나라
2026. 04. 25. 오전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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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 전 한 회의에서 만난 인도 공무원이 뜻밖의 푸념을 털어놓았다. 부탄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이주하는 일이 갈수록 늘어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행복한 나라’라는 명성 외에 부탄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던 필자에게 이 이야기는 작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행복한 나라에서 왜 살려 하지 않는 걸까.
부탄은 국내총생산(GDP) 대신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을 국가 목표로 삼는 나라다. 소득 기준으로는 가난할지 몰라도, 행복을 지수화하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 국왕의 발언이 그 출발점이었다. 이후 환경 보호, 공동체·문화 보존, 정신적 웰빙 등 148개 항목의 설문조사를 토대로 양적 경제지표보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GNH가 측정되기 시작했다. 2022년 조사에서는 GNH가 1점 만점에 0.781점으로 집계되어 부탄인들은 2015년보다 3.3% 더 행복해진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나아가 “GNH는 GDP처럼 돈으로 표현될 수 있는 가치를 넘어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차세대 경제지표로 간주될 수 있다”는 칭송도 존재한다(Sander Tideman, 2011). 그렇게 부탄은 “행복의 나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부탄인들은 대거 나라를 등지고 있다. 2023년 한 해에만 전체 인구의 약 1.5%가 일자리와 학업을 위해 호주로 떠났다. 행복지수보다 현재 혹은 미래의 소득이 이주 결정에 훨씬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정치적 억압 역시 부가적인 요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우려스러운 점은 떠나는 이들 대부분이 청년과 전문직 종사자라는 사실이다. 두뇌 유출과 인력 부족이 심각해지자 부탄 총리는 마침내 정부의 경제적 실패를 시인하며, 경제지표에 더 비중을 두는 ‘GNH 2.0’의 필요성을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행복을 지수화하려는 시도는 부탄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그중 가장 널리 인용되는 지표는 갤럽과 UN 등이 협업하여 발표하는 옥스퍼드대의 ‘세계행복지수(WHI: World Happiness Index)’다. 이 연구는 ‘행복’이라는 주관적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에 관해 유익한 분석을 제공하고 있으나, 국가 전체의 행복을 측정하는 작업은 결국 갤럽 설문조사에 의존한다. 객관성을 담보하는 하드 데이터가 아닌 소프트 데이터에 기반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까지 과학이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가 문제라는 지적에서부터 “숨겨진 의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의 외형을 차용한 모호한 담론”이라는 거센 비판까지 제기된다(Ashley Frawley, 2015).
이 대목에서 눈길을 끄는 사실이 하나 있다. 갤럽은 행복지수뿐 아니라 ‘살고 싶은 나라(Would like to live in)’에 대한 설문조사도 실시하는데 그 결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행복지수에서는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 항상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10위권 밖에 밀려있다. 그러나 살고 싶은 나라는 미국이 예외 없이 압도적 1위를 고수하는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모두 10위권 밖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도 두 지수 사이의 간극이 크다. 한국은 살고 싶은 나라 순위에서 20위권으로, 일본을 제외하면 동남아시아·중남미 국가 중 우리를 앞서는 나라가 없다. 그러나 행복지수는 2026년 67위에 그쳤다. 우루과이(31위)·브라질(32위)·엘살바도르(37위)·아르헨티나(44위)·베트남(45위)·니카라과(51위)·태국(52위)·필리핀(56위)·중국(65위) 등이 모두 우리보다 ‘행복한 나라’이지만, 살고 싶은 나라로는 꼽히지 않는다. 자료 수집이 가능하다면 북한의 행복지수가 어디쯤 위치할지도 자못 궁금해진다.
국가 전체의 행복 수준을 객관화하기는 지극히 어렵지만, ‘살고 싶은 나라’는 객관적 검증의 실마리를 일부 찾을 수 있다. 관찰할 수 없는 개인의 선호가 실제 행동으로 현시(現示)된 국가 간 이민 자료가 그것이다. 물론 각국의 이민정책과 언어장벽, 이민에 수반되는 경제적 부담 등 수많은 제약요인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실제 이민 흐름은 소득이 낮은 나라에서 높은 나라로 향한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International Migrant Stock, UN, 2024). 사람들은 당장 안락한 나라보다 기회가 있는 나라를 선택한다는 방증이다.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데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GDP와 같은 경제 변수만으로 행복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객관화가 거의 불가능한 지표에 국가 정책을 기대는 것은 위험하다. 자칫 영향력 있는 소수의 가치 판단이 정당화되면서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목표에 매몰될 가능성도 있다.
경제지표의 한계를 넘어서는 포괄적 국가 비전을 모색한다면, ‘행복한 나라’보다는 ‘살고 싶은 나라’가 조금은 더 안전하고 구체성을 갖춘 좌표일 수 있다. 그리고 행복지수와 달리, 살고 싶은 나라의 순위는 소득 수준과 같은 객관적 경제지표와 훨씬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하다.
부탄은 국내총생산(GDP) 대신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을 국가 목표로 삼는 나라다. 소득 기준으로는 가난할지 몰라도, 행복을 지수화하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 국왕의 발언이 그 출발점이었다. 이후 환경 보호, 공동체·문화 보존, 정신적 웰빙 등 148개 항목의 설문조사를 토대로 양적 경제지표보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GNH가 측정되기 시작했다. 2022년 조사에서는 GNH가 1점 만점에 0.781점으로 집계되어 부탄인들은 2015년보다 3.3% 더 행복해진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나아가 “GNH는 GDP처럼 돈으로 표현될 수 있는 가치를 넘어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차세대 경제지표로 간주될 수 있다”는 칭송도 존재한다(Sander Tideman, 2011). 그렇게 부탄은 “행복의 나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부탄인들은 대거 나라를 등지고 있다. 2023년 한 해에만 전체 인구의 약 1.5%가 일자리와 학업을 위해 호주로 떠났다. 행복지수보다 현재 혹은 미래의 소득이 이주 결정에 훨씬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정치적 억압 역시 부가적인 요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우려스러운 점은 떠나는 이들 대부분이 청년과 전문직 종사자라는 사실이다. 두뇌 유출과 인력 부족이 심각해지자 부탄 총리는 마침내 정부의 경제적 실패를 시인하며, 경제지표에 더 비중을 두는 ‘GNH 2.0’의 필요성을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행복을 지수화하려는 시도는 부탄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그중 가장 널리 인용되는 지표는 갤럽과 UN 등이 협업하여 발표하는 옥스퍼드대의 ‘세계행복지수(WHI: World Happiness Index)’다. 이 연구는 ‘행복’이라는 주관적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에 관해 유익한 분석을 제공하고 있으나, 국가 전체의 행복을 측정하는 작업은 결국 갤럽 설문조사에 의존한다. 객관성을 담보하는 하드 데이터가 아닌 소프트 데이터에 기반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까지 과학이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가 문제라는 지적에서부터 “숨겨진 의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의 외형을 차용한 모호한 담론”이라는 거센 비판까지 제기된다(Ashley Frawley, 2015).
이 대목에서 눈길을 끄는 사실이 하나 있다. 갤럽은 행복지수뿐 아니라 ‘살고 싶은 나라(Would like to live in)’에 대한 설문조사도 실시하는데 그 결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행복지수에서는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 항상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10위권 밖에 밀려있다. 그러나 살고 싶은 나라는 미국이 예외 없이 압도적 1위를 고수하는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모두 10위권 밖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도 두 지수 사이의 간극이 크다. 한국은 살고 싶은 나라 순위에서 20위권으로, 일본을 제외하면 동남아시아·중남미 국가 중 우리를 앞서는 나라가 없다. 그러나 행복지수는 2026년 67위에 그쳤다. 우루과이(31위)·브라질(32위)·엘살바도르(37위)·아르헨티나(44위)·베트남(45위)·니카라과(51위)·태국(52위)·필리핀(56위)·중국(65위) 등이 모두 우리보다 ‘행복한 나라’이지만, 살고 싶은 나라로는 꼽히지 않는다. 자료 수집이 가능하다면 북한의 행복지수가 어디쯤 위치할지도 자못 궁금해진다.
국가 전체의 행복 수준을 객관화하기는 지극히 어렵지만, ‘살고 싶은 나라’는 객관적 검증의 실마리를 일부 찾을 수 있다. 관찰할 수 없는 개인의 선호가 실제 행동으로 현시(現示)된 국가 간 이민 자료가 그것이다. 물론 각국의 이민정책과 언어장벽, 이민에 수반되는 경제적 부담 등 수많은 제약요인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실제 이민 흐름은 소득이 낮은 나라에서 높은 나라로 향한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International Migrant Stock, UN, 2024). 사람들은 당장 안락한 나라보다 기회가 있는 나라를 선택한다는 방증이다.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데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GDP와 같은 경제 변수만으로 행복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객관화가 거의 불가능한 지표에 국가 정책을 기대는 것은 위험하다. 자칫 영향력 있는 소수의 가치 판단이 정당화되면서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목표에 매몰될 가능성도 있다.
경제지표의 한계를 넘어서는 포괄적 국가 비전을 모색한다면, ‘행복한 나라’보다는 ‘살고 싶은 나라’가 조금은 더 안전하고 구체성을 갖춘 좌표일 수 있다. 그리고 행복지수와 달리, 살고 싶은 나라의 순위는 소득 수준과 같은 객관적 경제지표와 훨씬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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