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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해외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들, 왜 여전히 제도 밖에 있을까

2026. 05. 05. 오전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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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는 한국인 아버지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코피노(Kopino)’라고 부른다. 베트남에서는 ‘라이따이한’, 캄보디아에서는 ‘깟꼬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름은 나라별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아이가 태어났지만 법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제도 밖에 놓이는 경우라는 점이다. 한국 법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미인지 해외출생 자녀’라고 부른다.

한국 국적법은 부모가 한국 국적이면 해외에서 태어난 자녀도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있는 구조다. 이를 '속인주의'라고 한다. 하지만 자동으로 국적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특히 부모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아버지가 “이 아이는 내 자녀다”라고 인정하는 ‘인지 신고’를 해야만 국적 취득 절차가 시작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아이가 아니라 아버지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책임을 지지 않거나 연락이 끊기면, 아이는 한국 국적을 받을 방법이 없어질 수 있다. 결국 태어났지만 법적으로는 아무 나라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아버지가 이미 한국에 다른 가족이 있는 경우 등 현실적인 이유로 인지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도가 작동하지 못하고, 아이의 법적 상태가 오랫동안 불확실하게 남게 된다.

국적이 불확실한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활에서 많은 어려움과 불편을 겪는다. 출생 신고나 국적이 없으면 학교에 다니거나 병원 치료를 받는 것, 복지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제한이 생길 수 있다. 단순한 서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

교육에서도 차이가 생긴다. 한국 국적이 없으면 전 세계에 있는 34개의 한국국제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 입학 자격이 안된다. 또 한국 대학 입시에서 적용되는 12년 특례입학 제도도 이용할 수 없다. 즉 한국 교육과 연결되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히는 셈이다.

이 문제는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캄보디아 등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사례가 나타난다. 필리핀에서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코피노 아동이 약 1,000명 정도지만, 실제로는 2만~3만 명까지 있을 수 있다는 추정도 있다. 많은 아이들이 출생 신고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캄보디아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프놈펜 현지에서 필자가 직접 확인한 미인지 자녀 사례만 해도 최소 60~70명 정도가 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은 대부분 공식 기록에 남지 않아 실제 규모는 더 클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국적이 불확실한 상태로 자라는 아이들은 교육, 의료, 취업 등 기본적인 삶의 기회를 제한받는다. 또 자신이 어느 나라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한다. 일부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일찍 일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제도 구조에 있다. 현재 시스템은 아버지가 인지 신고를 해야만 국적이 결정되는데, 해외에서는 아버지를 찾거나 책임을 강제하기 어렵다. 연락이 끊기면 제도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에는 제도를 바꾸자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자 관계를 확인하거나, 국적이 결정되기 전까지 임시 체류 자격을 주는 방법 등이 이야기되고 있다. 또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정부와 전문가들은 신중한 입장이다. 국적은 단순한 행정 처리가 아니라 국가의 기준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와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이 문제는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전체의 문제다.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지만, 현재 제도는 그 시작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는 제도를 조금 더 현실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 아버지의 신고에만 의존하지 않고, 아이가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이 아이들은 단순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미래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안정적인 교육과 법적 지위를 갖게 되면, 한국과 현지 사회를 모두 이해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두 나라를 연결하는 미래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지금처럼 법적 문제와 사회적 합의 부족을 이유로 들어 제도 밖에 그대로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제도 안으로 포용해 미래를 준비할 것인지에 따라 아이들의 삶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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