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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팀장·박왕열도 이 사람 손바닥에 있었다 [월간중앙]
2026. 05. 23. 오후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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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피플] 역대 최장기 인터폴 계장 전재홍
“동남아 도피 사범들, 마약왕 밑에서 밀수 배워…인천세관 검사 너무 허술”
무너진 외사·사이버 수사력 복구 시급…투약자 아닌 공급 루트 타격해야
전재홍 전 총경은 외사(外事)계의 베테랑이다. 재직 시절 검거한 해외도피 사범만 2000명이 넘는다. 2016년 초부턴 인터폴 국제공조과 계장으로 8년간 있으면서 지역 불문하고 전 세계를 총괄하며 최전선에서 도피 사범을 추적해왔다. 김정훈 기자
외사(外事)계의 베테랑 전재홍(55) 전 총경이 재직 시절 검거한 해외도피 사범만 2000명이 넘는다. 간혹 뉴스에선 주요 사건 피의자가 외국에서 붙잡혀 국내 송환된다는 소식을 볼 수 있는데, 웬만해선 전 전 총경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초부턴 인터폴(Interpol·국제형사경찰기구) 국제공조과 계장으로 8년간 있으면 서 지역 불문하고 전 세계를 총괄하며 최전선에서 도피 사범을 추적해왔다.
1세대 보이스피싱 범죄자 ‘김미영 팀장’ 박정훈부터 동남아 3대 마약왕으로 불리는 박왕열·최정옥·김형렬도 그의 감시 하에 검거됐고, 토토사이트를 운영하다 IT 개발자를 살해한 후 베트남에 잠적한 성남국제마피아 김형진도 2년 6개월 만에 그에게 덜미를 잡혔다.
흥미로운 건 동남아로 도피한 수배자 대다수가 생활을 이어가고자 택한 경제활동이 거의 마약 유통과 연관된다는 점이다. 사기 혐의로 입건될 기미를 알아채고 출국한 수배자의 행적이 끊어졌지만, 후일 그가 마약 공급책으로 활동한단 뜻밖의 첩보로 근황을 알게 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동남아산(産) 마약의 국내 유입이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는데, 수배자들 상당수가 이에 가담하고 있는 셈이다. 〈월간중앙〉은 수배자들의 생태계와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 전 총경을 만나 실태를 확인했다.
지난 4월 30일 경찰에서 퇴직한 그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면서 홀가분하다는 소회를 드러냈다.
혐의는 달라도 수배자의 종착지는 마약 밀수
Q : 인터폴 계장 8년 근무는 역대 최장기라고들 한다. 정확히 인터폴은 어떤 곳인가?
“196개 인터폴 회원국과 각종 범죄 관련 첩보를 교환하고, 해당 국가에 숨어든 해외도피 사범을 체포해 송환하는 게 주 업무다.”
Q : 아무래도 공조 업무다 보니 조율하는 일이 많을 듯하다.
“그렇다. 도피 사범을 추적해 검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효율적이고 우선해야 할 일은 인터폴 적색수배와 여권 무효화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야 도피 사범의 운신을 제한하고 국가 간 이동도 막을 수 있다. 그 후 도피 사범이 어디 있는지 파악해야 하는데, 이러한 ‘소재 첩보’와 더불어 도피 사범 검거까지 타국 경찰과의 공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Q : 정보를 다루는 일인 만큼 보안에도 굉장히 민감할 것 같다.
“보안 유지는 기본이다. 도피 사범이 수배자 신분인 걸 모르고 입국하다 인천공항에서 검거되는 경우도 많다. 본인이 감시받고 있다는 걸 모르게 하면서 추적해야 한다.”
Q : 주로 동남아가 수배자들의 도피처 아닌가.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 있나?
“답변은 곤란하다(웃음). 어느 나라에서 잡히는지 알면 앞으로 도피 사범들이 그 나라는 피해 갈 테니까. 그나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누적된 도피 사범 숫자는 중국이 제일 많다. 한국어와 중국어가 가능한 특수 신분의 조선족까지 포함돼서.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과거에는 미국이 제일 많았다.”
Q : 업무 특성상 해외 출장도 잦았을 것 같다.
“코로나19로 비행길이 막혔던 2년을 제외하고 총 32차례 다녀왔다. 인사이동이 잦은 경찰 조직 특성상 앞으로 이 기록을 깨긴 어렵지 않을까. 갈 때마다 항상 신경 쓰고 조바심을 냈다. 이번에 못 잡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전 전 총경은 인터폴에 발령받은 직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피 사범 수에 직면한 뒤 검거가 시급한 핵심 피의자들부터 우선순위로 추려내는 작업을 한 바 있다. 이를 통해 검거한 대표적인 범죄자가 김형렬(52)이다. 베트남 호찌민에 근거지를 둔 그는 최근 국내로 강제 송환된 박왕열의 상선으로 분류될 만큼 막대한 양의 필로폰을 국내로 밀수해온 최대 공급책이었다. 한편 이러한 전 전 총경의 아이디어는 2022년 인터폴계가 우선 검거 대상자를 추린 ‘국외 도피 사범 100’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Q : 8년 동안 해외도피사범 2000명을 검거했다. 그 가운데 유독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적색수배 요건을 개정한 일이다. 도피 사범은 경제사범이 가장 많은데, 제가 부임하기 전 경제사범에 대한 적색수배 기준은 재산범죄 피해액 50억원 이상이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당하는 대부분 경제범죄 - 보이스피싱, 사이버 도박 등 피해금은 몇천만원이고 많아야 수억원 아닌가. 민생경제범죄 해결을 위해 기준을 낮추려 했는데 생각보다 주위 반발이 심했다. 주된 이유는 인력난이었다. 안 그래도 업무가 많은데 추적 대상이 늘면 곤란하다는 거였다.”
“그럴 때는 별수 없다. 설득하는 수밖에. 어쨌든 우리의 어려움보다는 개정의 당위성이 더 컸다. 인터폴 사무총국도 제 의견에 이견 없이 찬성한다고 밝혀왔다. 그렇게 해서 나우루라는 국가로 도주한 수배자를 추적하게 됐다.”
“남태평양 소재 피지 인근의 작은 섬이다. 면적도 21㎢로 우리나라 용산구 정도의 크기다. 2006~2008년 가스충전소 인허가를 받은 뒤 되팔자고 거짓말하는 수법 등으로 11억원의 사기 피해액을 가로채고 나우루로 잠적했다. 그 전까지는 적색수배 대상이 아니었지만, 기준이 개정되면서 검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언론에는 나우루에 한국 교민이 단 2명뿐이라고 보도했는데, 그 2명이 바로 박씨와 그의 가족이었다. 그만큼 생소하고 작은 나라였다. 그리고 그 사건을 담당하면서 피지 섬에 들렀는데 그곳 교민 간담회에서 은혜로교회 사건을 접하게 됐다.”
지난 2017년 12월, 필리핀 도피 범죄자 47명을 전세기로 집단 송환한 ‘한국판 콘에어’는 전재홍 전 총경의 작품이다. 이들 47명은 적색수배 대상자 11명을 포함해 보이스피싱(28명) 등 사기 사범 39명과 마약·폭력·절도 사범으로 구성됐다. [연합뉴스]
적색수배 문턱 낮춰 민생범죄 끝까지 추적
Q : 예전에 TV에서 본 것 같은데… 사이비종교에서 신도들을 감금·폭행한 사건 아닌가?
“맞다. 인터폴 계장으로 근무하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노력한 사건이다. 종교 단체 문제였고 수많은 신도의 안전과 관련된 사안이어서 신중하게 접근했다.”
은혜로교회는 한때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이었으나 성경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설파하는 등 논란에 휘말려 이단으로 결정된 바 있다. 이 교회의 교주 신옥주는 국내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피지로 신도 400여 명을 이주시키고 자기만의 성역을 만들었다. 낙원을 꿈꾸며 피지로 간 신도들은 그 안에서 살인적인 무임금 노동에 시달렸고 반항 시 폭행당하다가 급기야 신도 1명이 사망하기에 이른다.
Q : 조직 사건은 연루자가 많아 수사 난도가 높지 않나.
“경기남부청 국제범죄수사대에서 수사를 진행했는데, 1년 동안 수사 첩보를 작성한 보고서가 1만 페이지를 넘길 정도로 방대했다. 결국 2018년 진행된 검거 작전에 저도 현지 명예경찰 자격으로 참여했다. 대다수 체포했지만 아쉽게도 일부는 현지에 뇌물을 줘서 못 데려왔다. 하지만 그 나라 정권이 바뀌어서 조만간 송환될 거로 보인다.”
Q : 이럴 때마다 꼭 범죄자와 현지 공무원 간 유착 문제가 터져 나온다.
“그런 일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보호비를 상납하며 현지 경찰의 비호를 받는 게 능사는 못 된다. 사건이 터지면 다들 본인 살기 바빠서 뒤로 빠진다.”
Q : 필리핀 이민청 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됐던 박왕열도 탈출한 적 있잖은가. 공무원들의 조력이 있던 걸로 안다.
“천장을 뚫고 탈출했다. 당시 보호소로 출장 가 보니 내부를 감시하던 CCTV가 돌아가고 있음에도 전혀 제지하지 못한 거였다. 이후 보호소 소장을 포함해 이민청 직원 상당수가 교체됐다.”
Q : 박왕열 사건을 알아보니 동남아로 잠적한 도피 사범들이 마약 밀수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마약 밀수는 공급 루트 하나만 뚫으면 된다. 그래서 수배자들이 거물급 마약상 밑으로 들어가 루트를 소개받고 일을 배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22년 7월경 베트남 호찌민의 김형렬 은신처를 급습했을 때도 현장에서 또 다른 수배자를 검거했다. 보이스피싱 혐의로 필리핀으로 도피했던 인물인데, 이번엔 마약 밀수로 돈을 벌겠다며 베트남으로 건너가 김형렬 아래서 활동하고 있었다.”
Q : 최정옥도 보이스피싱과 마약 밀수를 병행했다고 하던데.
“범죄 유형은 다르지만 서로 겹치는 구석이 있다. 최정옥은 검거와 국내 송환이 험난했던 케이스다. 애초에 2018년 태국에서 검거됐지만, 현지 사법당국이 보석으로 풀어줘서 놓쳤고, 국정원의 중개로 그가 도피한 캄보디아 경찰과 협의해 재검거했음에도 행정 절차에 시간이 소요돼 신병 확보에 많은 시간을 뺏겼다.”
한편 최정옥도 이런 악연(?)을 잊지 못하는 듯하다. 지난 2024년 7월 의정부교도소를 찾은 접견인에게 그녀는 자신을 포함한 여러 해외도피 사범 검거기를 다룬 전 전 총경의 서적 〈지구 끝까지 쫓는다〉를 언급하기도 했다.
전재홍 전 총경은 인터폴 계장 시절 재산 피해 50억원 이상만 해당하던 적색수배 대상 문턱을 낮춰 일부에 치중됐던 검거망을 민생 사범으로 확대했다. 김정훈 기자
마약과의 전쟁, 투약자 아닌 유통망 쳐야
Q : 동남아산 마약은 대체 무슨 수로 국내에 들어오게 되는 건가?
“골든 트라이앵글과 같은 마약 생산지의 조직에서 마약을 도매로 구입한 후 국제우편 화물로 들이는 식이다. 그러면 국내에 있는 중간 판매책들이 화물을 받아 텔레그램 등 추적이 어려운 SNS로 판매한다. 간혹 인편으로 마약을 밀수하다 적발되는 사례도 나오긴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커서 흔한 방법은 아니다.”
Q : 그런 얘기를 들었다. 마약계에서 인천세관은 구멍으로 통한다고.
“이제 AI 기술을 막 도입한 거로 알고 있다. 데이터를 축적해서 의심되는 특정 화물에 대해선 선별적으로 검문하는 등 획기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지금 세관에서 불시에 마약 화물을 적발해내는 건 첩보에 의한 경우가 많다. 앞으로는 세관의 자체적인 적발률이 높아지길 기대한다.”
Q : 마약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시급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 또 있다면?
“마약 수사가 유통망 검거를 중심으로 진행돼야 한다. 현재는 투약자 검거에 치중돼 있는데, 단순 투약자는 불나방을 잡는 것과 같아서 유치장만 포화될 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 유통망 본체를 타격하는 수사에 집중해야 마약 확산을 저지할 수 있다. 또한 단순 투약자나 초범은 처벌보다 자활과 갱생 시스템으로 유도하는 정책적인 전환도 필요하다.”
Q : 단순 투약자 검거가 더 쉬워서 치중된 게 아닌가?
“부정할 순 없다. 확실히 유통망 검거가 고과 점수가 제일 높으니까. 그만큼 어렵고 시간도 많이 뺏긴다. 총책이 동남아 등 해외에 있어서 관할서 차원에선 못 잡는다. 그렇다면 외사·정보·사이버 분야의 베테랑들이 움직여야 하는데, 지난 정권에서 경찰 내 이 분야를 모두 격하시켰다. 그래서 수사 동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다. 개선이 필요하다.”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동남아 도피 사범들, 마약왕 밑에서 밀수 배워…인천세관 검사 너무 허술”
무너진 외사·사이버 수사력 복구 시급…투약자 아닌 공급 루트 타격해야
전재홍 전 총경은 외사(外事)계의 베테랑이다. 재직 시절 검거한 해외도피 사범만 2000명이 넘는다. 2016년 초부턴 인터폴 국제공조과 계장으로 8년간 있으면서 지역 불문하고 전 세계를 총괄하며 최전선에서 도피 사범을 추적해왔다. 김정훈 기자
외사(外事)계의 베테랑 전재홍(55) 전 총경이 재직 시절 검거한 해외도피 사범만 2000명이 넘는다. 간혹 뉴스에선 주요 사건 피의자가 외국에서 붙잡혀 국내 송환된다는 소식을 볼 수 있는데, 웬만해선 전 전 총경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초부턴 인터폴(Interpol·국제형사경찰기구) 국제공조과 계장으로 8년간 있으면 서 지역 불문하고 전 세계를 총괄하며 최전선에서 도피 사범을 추적해왔다.
1세대 보이스피싱 범죄자 ‘김미영 팀장’ 박정훈부터 동남아 3대 마약왕으로 불리는 박왕열·최정옥·김형렬도 그의 감시 하에 검거됐고, 토토사이트를 운영하다 IT 개발자를 살해한 후 베트남에 잠적한 성남국제마피아 김형진도 2년 6개월 만에 그에게 덜미를 잡혔다.
흥미로운 건 동남아로 도피한 수배자 대다수가 생활을 이어가고자 택한 경제활동이 거의 마약 유통과 연관된다는 점이다. 사기 혐의로 입건될 기미를 알아채고 출국한 수배자의 행적이 끊어졌지만, 후일 그가 마약 공급책으로 활동한단 뜻밖의 첩보로 근황을 알게 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동남아산(産) 마약의 국내 유입이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는데, 수배자들 상당수가 이에 가담하고 있는 셈이다. 〈월간중앙〉은 수배자들의 생태계와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 전 총경을 만나 실태를 확인했다.
지난 4월 30일 경찰에서 퇴직한 그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면서 홀가분하다는 소회를 드러냈다.
혐의는 달라도 수배자의 종착지는 마약 밀수
Q : 인터폴 계장 8년 근무는 역대 최장기라고들 한다. 정확히 인터폴은 어떤 곳인가?
“196개 인터폴 회원국과 각종 범죄 관련 첩보를 교환하고, 해당 국가에 숨어든 해외도피 사범을 체포해 송환하는 게 주 업무다.”
Q : 아무래도 공조 업무다 보니 조율하는 일이 많을 듯하다.
“그렇다. 도피 사범을 추적해 검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효율적이고 우선해야 할 일은 인터폴 적색수배와 여권 무효화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야 도피 사범의 운신을 제한하고 국가 간 이동도 막을 수 있다. 그 후 도피 사범이 어디 있는지 파악해야 하는데, 이러한 ‘소재 첩보’와 더불어 도피 사범 검거까지 타국 경찰과의 공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Q : 정보를 다루는 일인 만큼 보안에도 굉장히 민감할 것 같다.
“보안 유지는 기본이다. 도피 사범이 수배자 신분인 걸 모르고 입국하다 인천공항에서 검거되는 경우도 많다. 본인이 감시받고 있다는 걸 모르게 하면서 추적해야 한다.”
Q : 주로 동남아가 수배자들의 도피처 아닌가.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 있나?
“답변은 곤란하다(웃음). 어느 나라에서 잡히는지 알면 앞으로 도피 사범들이 그 나라는 피해 갈 테니까. 그나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누적된 도피 사범 숫자는 중국이 제일 많다. 한국어와 중국어가 가능한 특수 신분의 조선족까지 포함돼서.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과거에는 미국이 제일 많았다.”
Q : 업무 특성상 해외 출장도 잦았을 것 같다.
“코로나19로 비행길이 막혔던 2년을 제외하고 총 32차례 다녀왔다. 인사이동이 잦은 경찰 조직 특성상 앞으로 이 기록을 깨긴 어렵지 않을까. 갈 때마다 항상 신경 쓰고 조바심을 냈다. 이번에 못 잡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전 전 총경은 인터폴에 발령받은 직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피 사범 수에 직면한 뒤 검거가 시급한 핵심 피의자들부터 우선순위로 추려내는 작업을 한 바 있다. 이를 통해 검거한 대표적인 범죄자가 김형렬(52)이다. 베트남 호찌민에 근거지를 둔 그는 최근 국내로 강제 송환된 박왕열의 상선으로 분류될 만큼 막대한 양의 필로폰을 국내로 밀수해온 최대 공급책이었다. 한편 이러한 전 전 총경의 아이디어는 2022년 인터폴계가 우선 검거 대상자를 추린 ‘국외 도피 사범 100’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Q : 8년 동안 해외도피사범 2000명을 검거했다. 그 가운데 유독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적색수배 요건을 개정한 일이다. 도피 사범은 경제사범이 가장 많은데, 제가 부임하기 전 경제사범에 대한 적색수배 기준은 재산범죄 피해액 50억원 이상이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당하는 대부분 경제범죄 - 보이스피싱, 사이버 도박 등 피해금은 몇천만원이고 많아야 수억원 아닌가. 민생경제범죄 해결을 위해 기준을 낮추려 했는데 생각보다 주위 반발이 심했다. 주된 이유는 인력난이었다. 안 그래도 업무가 많은데 추적 대상이 늘면 곤란하다는 거였다.”
“그럴 때는 별수 없다. 설득하는 수밖에. 어쨌든 우리의 어려움보다는 개정의 당위성이 더 컸다. 인터폴 사무총국도 제 의견에 이견 없이 찬성한다고 밝혀왔다. 그렇게 해서 나우루라는 국가로 도주한 수배자를 추적하게 됐다.”
“남태평양 소재 피지 인근의 작은 섬이다. 면적도 21㎢로 우리나라 용산구 정도의 크기다. 2006~2008년 가스충전소 인허가를 받은 뒤 되팔자고 거짓말하는 수법 등으로 11억원의 사기 피해액을 가로채고 나우루로 잠적했다. 그 전까지는 적색수배 대상이 아니었지만, 기준이 개정되면서 검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언론에는 나우루에 한국 교민이 단 2명뿐이라고 보도했는데, 그 2명이 바로 박씨와 그의 가족이었다. 그만큼 생소하고 작은 나라였다. 그리고 그 사건을 담당하면서 피지 섬에 들렀는데 그곳 교민 간담회에서 은혜로교회 사건을 접하게 됐다.”
지난 2017년 12월, 필리핀 도피 범죄자 47명을 전세기로 집단 송환한 ‘한국판 콘에어’는 전재홍 전 총경의 작품이다. 이들 47명은 적색수배 대상자 11명을 포함해 보이스피싱(28명) 등 사기 사범 39명과 마약·폭력·절도 사범으로 구성됐다. [연합뉴스]
적색수배 문턱 낮춰 민생범죄 끝까지 추적
Q : 예전에 TV에서 본 것 같은데… 사이비종교에서 신도들을 감금·폭행한 사건 아닌가?
“맞다. 인터폴 계장으로 근무하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노력한 사건이다. 종교 단체 문제였고 수많은 신도의 안전과 관련된 사안이어서 신중하게 접근했다.”
은혜로교회는 한때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이었으나 성경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설파하는 등 논란에 휘말려 이단으로 결정된 바 있다. 이 교회의 교주 신옥주는 국내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피지로 신도 400여 명을 이주시키고 자기만의 성역을 만들었다. 낙원을 꿈꾸며 피지로 간 신도들은 그 안에서 살인적인 무임금 노동에 시달렸고 반항 시 폭행당하다가 급기야 신도 1명이 사망하기에 이른다.
Q : 조직 사건은 연루자가 많아 수사 난도가 높지 않나.
“경기남부청 국제범죄수사대에서 수사를 진행했는데, 1년 동안 수사 첩보를 작성한 보고서가 1만 페이지를 넘길 정도로 방대했다. 결국 2018년 진행된 검거 작전에 저도 현지 명예경찰 자격으로 참여했다. 대다수 체포했지만 아쉽게도 일부는 현지에 뇌물을 줘서 못 데려왔다. 하지만 그 나라 정권이 바뀌어서 조만간 송환될 거로 보인다.”
Q : 이럴 때마다 꼭 범죄자와 현지 공무원 간 유착 문제가 터져 나온다.
“그런 일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보호비를 상납하며 현지 경찰의 비호를 받는 게 능사는 못 된다. 사건이 터지면 다들 본인 살기 바빠서 뒤로 빠진다.”
Q : 필리핀 이민청 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됐던 박왕열도 탈출한 적 있잖은가. 공무원들의 조력이 있던 걸로 안다.
“천장을 뚫고 탈출했다. 당시 보호소로 출장 가 보니 내부를 감시하던 CCTV가 돌아가고 있음에도 전혀 제지하지 못한 거였다. 이후 보호소 소장을 포함해 이민청 직원 상당수가 교체됐다.”
Q : 박왕열 사건을 알아보니 동남아로 잠적한 도피 사범들이 마약 밀수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마약 밀수는 공급 루트 하나만 뚫으면 된다. 그래서 수배자들이 거물급 마약상 밑으로 들어가 루트를 소개받고 일을 배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22년 7월경 베트남 호찌민의 김형렬 은신처를 급습했을 때도 현장에서 또 다른 수배자를 검거했다. 보이스피싱 혐의로 필리핀으로 도피했던 인물인데, 이번엔 마약 밀수로 돈을 벌겠다며 베트남으로 건너가 김형렬 아래서 활동하고 있었다.”
Q : 최정옥도 보이스피싱과 마약 밀수를 병행했다고 하던데.
“범죄 유형은 다르지만 서로 겹치는 구석이 있다. 최정옥은 검거와 국내 송환이 험난했던 케이스다. 애초에 2018년 태국에서 검거됐지만, 현지 사법당국이 보석으로 풀어줘서 놓쳤고, 국정원의 중개로 그가 도피한 캄보디아 경찰과 협의해 재검거했음에도 행정 절차에 시간이 소요돼 신병 확보에 많은 시간을 뺏겼다.”
한편 최정옥도 이런 악연(?)을 잊지 못하는 듯하다. 지난 2024년 7월 의정부교도소를 찾은 접견인에게 그녀는 자신을 포함한 여러 해외도피 사범 검거기를 다룬 전 전 총경의 서적 〈지구 끝까지 쫓는다〉를 언급하기도 했다.
전재홍 전 총경은 인터폴 계장 시절 재산 피해 50억원 이상만 해당하던 적색수배 대상 문턱을 낮춰 일부에 치중됐던 검거망을 민생 사범으로 확대했다. 김정훈 기자
마약과의 전쟁, 투약자 아닌 유통망 쳐야
Q : 동남아산 마약은 대체 무슨 수로 국내에 들어오게 되는 건가?
“골든 트라이앵글과 같은 마약 생산지의 조직에서 마약을 도매로 구입한 후 국제우편 화물로 들이는 식이다. 그러면 국내에 있는 중간 판매책들이 화물을 받아 텔레그램 등 추적이 어려운 SNS로 판매한다. 간혹 인편으로 마약을 밀수하다 적발되는 사례도 나오긴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커서 흔한 방법은 아니다.”
Q : 그런 얘기를 들었다. 마약계에서 인천세관은 구멍으로 통한다고.
“이제 AI 기술을 막 도입한 거로 알고 있다. 데이터를 축적해서 의심되는 특정 화물에 대해선 선별적으로 검문하는 등 획기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지금 세관에서 불시에 마약 화물을 적발해내는 건 첩보에 의한 경우가 많다. 앞으로는 세관의 자체적인 적발률이 높아지길 기대한다.”
Q : 마약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시급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 또 있다면?
“마약 수사가 유통망 검거를 중심으로 진행돼야 한다. 현재는 투약자 검거에 치중돼 있는데, 단순 투약자는 불나방을 잡는 것과 같아서 유치장만 포화될 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 유통망 본체를 타격하는 수사에 집중해야 마약 확산을 저지할 수 있다. 또한 단순 투약자나 초범은 처벌보다 자활과 갱생 시스템으로 유도하는 정책적인 전환도 필요하다.”
Q : 단순 투약자 검거가 더 쉬워서 치중된 게 아닌가?
“부정할 순 없다. 확실히 유통망 검거가 고과 점수가 제일 높으니까. 그만큼 어렵고 시간도 많이 뺏긴다. 총책이 동남아 등 해외에 있어서 관할서 차원에선 못 잡는다. 그렇다면 외사·정보·사이버 분야의 베테랑들이 움직여야 하는데, 지난 정권에서 경찰 내 이 분야를 모두 격하시켰다. 그래서 수사 동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다. 개선이 필요하다.”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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