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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본업 모멘트
2026. 06. 11. 오전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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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은 에세이집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밥에는 대책이 없다”고 했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게 밥이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하릴없이 매일 지난한 시간을 견뎌내는 게 밥벌이의 본질이건만 그 자체로 광휘에 휩싸이는 순간이 있다. 시쳇말로 ‘본업 모멘트’의 순간이다. 생계 등을 위해 주로 하는 일인 본업(本業)에 순간을 뜻하는 영단어 모멘트(moment)를 붙인 신조어로 자기 전문 분야의 일을 할 때 탁월성을 보이는 찰나를 의미한다.
이 순간만큼은 밥벌이란 표현에 붙는 수식어가 바뀐다. 늘 따라붙던 지겨움이나 고단함보단 경탄이나 감탄이란 표현이 썩 더 어울린다. 십여 년간 밥벌이 현장에 머문 나 역시 누군가의 본업 모멘트를 보고 감탄한 적이 꽤 된다. 13년 전 필리핀을 강타한 슈퍼 태풍 하이옌 재난 현장에서 경험한 일이다. 구호용품이 절실한 지역을 찾아간 터라 현장은 매우 어수선했고 전력·통신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이곳을 찾은 각사 기자들은 그럼에도 최선의 방편을 찾아 보도에 진력했다. 이때 한 방송기자가 도심의 숙소로 이동하던 차 안에서 리포팅을 녹음했는데 엄청난 집중력과 순발력으로 안정적 실력을 보여줬다. 동승한 이들의 갈채에 당사자는 멋쩍어했지만 나 역시 진심으로 경탄하며 박수 쳤던 기억이다.
최근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대전에서 ‘빵택시’를 운행하는 안성우 기사의 ‘대전 빵 투어’를 다룬 영상이었다. 여행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은퇴 후 택시로 지역 유명 빵집을 순례하는 여행 상품을 개발했다. 일정과 택시 내부에 촘촘히 담긴 디테일을 본 유튜버는 “업력 없인 할 수 없는 시도”라고 평했다. 댓글 역시 안 기사의 투철한 직업정신에 감탄하는 내용이 다수였다. “한 인간으로서 배울 게 많은 영상” “일 잘하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다는 걸 (영상을 보며) 깨달았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 분야에서 탄탄히 쌓은 ‘워크 에식’(직업윤리)은 은퇴 후에도 몸에 여전히 각인돼 타 분야에서도 경지에 이르도록 도와준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다.
각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의 본업 모멘트가 항상 빛나는 건 아니다. 이 빛을 잃게 하는 건 개인의 노동 의지가 꺾이는 사소한 순간이 아닐까 한다. 일부 대기업의 성과급이나 누군가의 투자 대박 소식 등을 접하며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소식만 듣다 보면 세상이란 톱니바퀴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기여한다는 자부심은 태풍 앞의 촛불처럼 쉽게 사그라들기 쉽다. 반도체 호황의 열매를 전 국민에게 나눠야 한다는 이야기도, 근로소득만 고귀하다는 시대착오적 논의를 꺼내려 한 말은 아니다. 그저 우리 사회가 각자의 본업 모멘트를 소중히 여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직장인이든 주부든 학생이든 어느 한 분야의 ‘본업 천재’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땀·눈물을 흘렸나. 이런 본업 모멘트가 우리 사회에 누적될 때 모두의 일상이 평온하게 유지될 수 있다.
한 유명 광고의 카피처럼 ‘프로는 아름답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사회에 참되고 선한 유익을 끼친다. 어쩌면 삶의 진선미를 제대로 응축시킬 때 본업 모멘트를, 더 나아가 천직을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미국 문화비평가인 캐런 스왈로우 프라이어는 저서 ‘당신의 소명은 무엇인가요’(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작가이자 목회자인 프레더릭 비크너의 말을 빌려 천직을 이렇게 정의한다.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시는 곳은 당신의 깊은 기쁨과 세상의 깊은 필요가 만나는 자리다.” 각자의 자리에서 본업 모멘트를 빛내는 이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전한다. 또 그 자리를 찾으려는 모든 이를 향해선 응원을 보낸다.
이 순간만큼은 밥벌이란 표현에 붙는 수식어가 바뀐다. 늘 따라붙던 지겨움이나 고단함보단 경탄이나 감탄이란 표현이 썩 더 어울린다. 십여 년간 밥벌이 현장에 머문 나 역시 누군가의 본업 모멘트를 보고 감탄한 적이 꽤 된다. 13년 전 필리핀을 강타한 슈퍼 태풍 하이옌 재난 현장에서 경험한 일이다. 구호용품이 절실한 지역을 찾아간 터라 현장은 매우 어수선했고 전력·통신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이곳을 찾은 각사 기자들은 그럼에도 최선의 방편을 찾아 보도에 진력했다. 이때 한 방송기자가 도심의 숙소로 이동하던 차 안에서 리포팅을 녹음했는데 엄청난 집중력과 순발력으로 안정적 실력을 보여줬다. 동승한 이들의 갈채에 당사자는 멋쩍어했지만 나 역시 진심으로 경탄하며 박수 쳤던 기억이다.
최근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대전에서 ‘빵택시’를 운행하는 안성우 기사의 ‘대전 빵 투어’를 다룬 영상이었다. 여행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은퇴 후 택시로 지역 유명 빵집을 순례하는 여행 상품을 개발했다. 일정과 택시 내부에 촘촘히 담긴 디테일을 본 유튜버는 “업력 없인 할 수 없는 시도”라고 평했다. 댓글 역시 안 기사의 투철한 직업정신에 감탄하는 내용이 다수였다. “한 인간으로서 배울 게 많은 영상” “일 잘하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다는 걸 (영상을 보며) 깨달았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 분야에서 탄탄히 쌓은 ‘워크 에식’(직업윤리)은 은퇴 후에도 몸에 여전히 각인돼 타 분야에서도 경지에 이르도록 도와준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다.
각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의 본업 모멘트가 항상 빛나는 건 아니다. 이 빛을 잃게 하는 건 개인의 노동 의지가 꺾이는 사소한 순간이 아닐까 한다. 일부 대기업의 성과급이나 누군가의 투자 대박 소식 등을 접하며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소식만 듣다 보면 세상이란 톱니바퀴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기여한다는 자부심은 태풍 앞의 촛불처럼 쉽게 사그라들기 쉽다. 반도체 호황의 열매를 전 국민에게 나눠야 한다는 이야기도, 근로소득만 고귀하다는 시대착오적 논의를 꺼내려 한 말은 아니다. 그저 우리 사회가 각자의 본업 모멘트를 소중히 여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직장인이든 주부든 학생이든 어느 한 분야의 ‘본업 천재’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땀·눈물을 흘렸나. 이런 본업 모멘트가 우리 사회에 누적될 때 모두의 일상이 평온하게 유지될 수 있다.
한 유명 광고의 카피처럼 ‘프로는 아름답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사회에 참되고 선한 유익을 끼친다. 어쩌면 삶의 진선미를 제대로 응축시킬 때 본업 모멘트를, 더 나아가 천직을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미국 문화비평가인 캐런 스왈로우 프라이어는 저서 ‘당신의 소명은 무엇인가요’(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작가이자 목회자인 프레더릭 비크너의 말을 빌려 천직을 이렇게 정의한다.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시는 곳은 당신의 깊은 기쁨과 세상의 깊은 필요가 만나는 자리다.” 각자의 자리에서 본업 모멘트를 빛내는 이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전한다. 또 그 자리를 찾으려는 모든 이를 향해선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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