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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낚으면 손톱 뽑힌다… ‘스캠 산업’의 진실

2026. 07. 18. 오전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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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프란체스키니·링 리·마크 보 지음|이정우 옮김|산지니|352쪽|2만5000원

지난 1월 경찰청은 캄보디아에 본거지를 둔 사기 범죄 조직으로부터 한국인 피해를 막기 위해 출범한 ‘코리아 전담반’이 한국 조직원 136명을 검거하고 한국인 4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같은 달 한국인 869명에게서 약 486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피의자 73명이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4월엔 500억원대 범죄 수익금을 챙기고 성 착취 범행까지 저지른 일당 73명이 추가 송환됐다. 상황이 끝나진 않았다.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삼던 범죄 조직은 라오스·미얀마 등 인접국으로 무대를 옮기는 추세다.

보이스 피싱, 로맨스 스캠, 투자 리딩방 등 끊이지 않는 ‘스캠’ 사기를 연구한 이 책은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경 범죄 네트워크’가 형성된 배경을 사회과학 연구 방법론으로 들여다본다. 캄보디아, 미얀마 등 범죄 생존자 96명을 심층 인터뷰했고, 이를 바탕으로 호주 멜버른대 아시아연구소 학자를 비롯해 세 연구자가 썼다. 저자들에 따르면, 스캠은 중국과 대만에서 시작돼 동남아 등 각국에 퍼져나가며 ‘산업’이 됐다.

캄보디아 칸달주의 한 범죄 단지 조직원이 된 타오는 매달 1만달러의 수익을 내야 했다. 매일 두세 명의 범죄 타깃을 유인해가며 관계를 쌓아갔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악몽이 시작됐다. 구타, 전기 충격 같은 폭력은 일상화됐고 경우에 따라 손톱이 뽑히기도 했다. 타오는 “건물에 자정까지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처벌방’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성과를 내야 했다. 휴대폰 10여 대로 이른 아침부터 자정까지 일했다.

“곧 한국에 가는데 당신과 만나고 싶어요” 같은 메시지를 받아본 적 있다면 높은 확률로 스캠 조직에서 보낸 것이다. 중국 경찰의 조사에선 ‘로맨스 스캠 문구 매뉴얼’도 나왔다. 제목은 ‘사랑, 우정, 도박을 위한 대화 문구집’. “당신이 메시지를 보내지 않으면 상대가 공허함을 느끼게 만들어라” “부드러움·공감 같은 여성적 특징을 활용해야 한다” 같은 내용이 담겼다. 성 정체성을 포함해 각종 ‘인물 설정집’을 갖고 있는 조직도 많아 콘텐츠 회사를 방불케 한다.

2017년 인터넷 사기 혐의로 캄보디아에서 체포된 피의자들이 추방되기 전 프놈펜 국제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이런 범죄에 연루된 인원은 세계 각국 수십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말단 조직원들은 보통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이중적 지위에 놓인다. 고액을 벌 수 있다는 취업 면접을 보러 갔거나, 납치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로로 들어왔든 대개 수만 달러에 이르는 금액을 지불하지 않고선 떠나기 어렵다. 일단 일원이 되면 항공 비용, 노동 허가비 등을 부과하며 빚을 안긴다. 숙소 생활 비용도 비싸게 책정된다. 아무리 오래 일해도 많은 경우 부채가 늘었다. 2022년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갇힌 리는 경찰 신고에 성공했으나 단지 관리자에게 소식이 전달됐다. 돌아온 건 폭력과 감금이었다. 탈출에 성공해도 상당한 벌금을 내지 않는 이상 당국의 구금을 피하긴 어렵다. ‘강제로 저지른 범죄’ 또한 대부분 처벌받기 때문이다. 인권 단체와 현지 당국이 자주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 책은 스캠 산업을 뿌리 뽑기 어려운 이유로 구조적 특징 세 가지를 짚는다. 먼저 ‘국제 이동’. 조직이 아시아 속 국경을 넘나들며 신속하게 거처를 옮길 수 있는 것이다. 엊그제 필리핀에 있던 조직이 아랍에미리트로 이동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지역 사회 포섭’도 문제다. 범죄 단지는 일상 생필품과 서비스를 주변 지역에서 공급받을 때 시중 가격 이상의 돈을 들인다. 범죄 수익이 지역 상권에도 꽤나 흘러가며 주민들이 범죄를 묵인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엘리트와의 결탁’도 많다. 한 범죄 단지에는 캄보디아 상원의원 콕 안이 소유한 회사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다수 목격됐다. 다른 상원의원 리용 팟은 사람들이 억류된 곳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때로는 지역 재벌의 투자로 범죄 단지가 개발되기도 한다.

저자들은 범죄 단지에 들어가게 되는 것에 대해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제한된 삶의 기회로 고임금 일자리라는 신기루에 이끌리게 된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속은 사람들에 대해선 “많은 이가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며 공감에 취약하게 됐다”고 한다. 범죄 조직 피라미드 최상위에 있는 누군가의 설계가 취약한 이들 간의 투쟁을 만들어낸 것이다. 스캠 범죄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는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 아세안 정상회의는 이런 초국가적 범죄에 대한 결의안 등을 채택하고 있지만 강제성은 없다. 국경·자본·권력의 틈새를 파고들며 성장해온 스캠 산업을 정부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검거 실적만이 답이 될 순 없다. 오늘도 당신의 전화기 너머 미끼가 던져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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