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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

2026. 08. 21. 오전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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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마지막 단계는 생명의 소멸이 아니라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이다

메인주 메커닉폴스 — 나는 메인주 메커닉폴스의 메이플그로브 묘지에 서 있다

내 앞 몇 피트 안에 직사각형 화강암 묘비 세 개가 놓여 있다

묘비 옆에는 둥근 금속 받침에 꽂힌 작은 성조기가 하나씩 조금 비스듬히 서 있다

아버지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육군 병장으로 복무했다

엘스워스 삼촌은 상선단에서 복무하며 북대서양 호송선단을 따라 여러 차례 대서양을 오갔다

모리스 삼촌은 솔로몬제도의 과달카날과 필리핀의 루손에서 싸웠고

육군 상사였던 할아버지 필립 프린스는 텍사스에서 병사들을 훈련했다

이 묘역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이들이 참전용사였다는 사실을 빼면 거의 없다

영문학 교수였던 어머니를 비롯해 여성들의 묘비에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주는 것이 거의 없다

특히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국가의 전쟁 기구에 복무했다는 사실이 최고의 지위를 부여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모리스 삼촌은 전쟁과 군대를 혐오했다

모리스 삼촌은 남태평양에서 돌아온 뒤 육체적

다른 친척들과 달리 아버지는 집에 총을 두는 것조차 거부했다

베트남전쟁 때는 반전운동가로 활동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내가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도 베트남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징집까지 당한다면

나는 지금도 그 모습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아버지와 내가 한 감방에 함께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내 의식 속에서 거대한 존재로 남아 있다

좋든 나쁘든 가장 가까운 가족이 우리에게 남기는 그 엄청난 흔적을 이들도 내 안에 남겼다

나는 지금도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우리 삶에서 별것 아닌 듯했던 작은 순간들이 오래된 영화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돌아간다

할아버지와 송어가 사는 개울에서 낚시하던 일

엘스워스 삼촌과 메인주 해안의 얼음장 같은 바닷물에서 오리 사냥을 하던 일

아버지가 설교하는 동안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있던 일

내가 좋아했지만 어머니는 좋아하지 않았던 윌리엄 포크너를 두고 어머니와 언쟁을 벌이던 일

몸집이 작고 짓궂을 만큼 유머 감각이 뛰어났던 할머니가 앞치마를 두르고 흰색 자기질 스토브에서 프렌치토스트를 굽던 모습

흐트러진 차림으로 조부모님의 작은 식탁에 앉아 있던 모리스 삼촌

우리 가족 중 술을 마시는 사람은 그뿐이었고

내가 아직 글을 읽기도 전부터 어머니는 내가 지어낸 이야기를 타자로 쳐서 작은 책자처럼 묶어주곤 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타 없어진 조부모님 댁에 가면

그곳에는 노란색 리걸패드와 가지런히 깎아놓은 연필들이 새눈무늬 단풍나무로 만든 재봉용 탁자 위에 줄지어 놓여 있었다

시골에서는 점심이 하루 중 가장 푸짐한 식사다

식사 시간이 되면 할머니는 좁은 계단 아래에서 친척들 특유의 짙은 메인주 억양으로

어린 시절 우리를 위해 굵은 들보에 그네를 매달아놓았고

내가 할아버지와 손수 낚시용 플라이를 묶어 만들던 붉은색 목조 헛간은 이제 부서진 목재 더미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필터 없는 카멜 담배를 하루에 한 갑씩 피웠고

놀랄 것도 없이 폐기종으로 여든다섯 살에 세상을 떠났다

완성한 방충제는 작은 호박색 유리병에 담아 총포점과 낚시용품점에 팔았다

할아버지는 나를 헛간으로 데려가 성경 위에 손을 얹게 했다

이 제조법을 누구에게도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해라

그러자 할아버지는 자신의 딸인 내 어머니에게도 절대로 알려주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맹세시켰다

지배적인 성격의 할아버지와 그에 완강하게 맞섰던 어머니의 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텅 빈 공간을 향해 말을 건다고 해서 나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삶에서 극적이었던 몇몇 순간도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간직한 기억은 대부분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이다

죽음은 그런 순간들을 성스럽게 만든다

년까지 뉴햄프셔주의 가상 마을 그로버스 코너스를 배경으로 한다

극 중 에밀리 깁스는 스물여섯 살에 둘째 아이를 낳다가 죽는다

에밀리는 마을 묘지에 있는 죽은 자들과 합류한다

그러나 먼저 세상을 떠난 마을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이를 듣지 않고

행복했던 하루를 다시 살아보기 위해 지상으로 돌아간다

에밀리는 열두 번째 생일날로 돌아간다

에밀리가 과거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도 그들은 에밀리를 보거나 들을 수 없다

에밀리는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한다

분만이라도 나를 정말 보는 것처럼 바라봐줘요

노스콘웨이로 캠핑을 갔다가 맹장이 터졌어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 함께 있어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시간조차 없어요

에밀리는 관객 너머 왼쪽을 바라본 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똑딱거리는 시계도…… 엄마의 해바라기도 안녕

갓 다림질한 옷과 뜨거운 목욕도…… 잠드는 것과 아침에 눈뜨는 것도 안녕

누구도 미처 깨닫지 못할 만큼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에밀리와 다른 영혼들은 그로버스 코너스 위로 별들이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본다

에밀리는 그들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고 인정한다

냉소적이고 술에 찌든 성가대 지휘자 사이먼 스팀슨이 에밀리에게 말한다

살아 있다는 게 어떤 것이었는지 말이야

무지의 구름 속을 헤매며 살아가는 것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짓밟는 것

마치 앞으로 백만 년이라도 살 것처럼 시간을 써버리고 낭비하는 것

언제나 자기중심적인 이런저런 욕망에 휘둘리며 사는 것

네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했던 행복한 삶이 바로 그런 거야

에밀리의 시어머니 깁스 부인이 말한다

에밀리의 남편 조지가 묘지로 찾아온다

그는 에밀리의 무덤 위에 몸을 내던진다

내 세대도 앞선 세대의 뒤를 따라갈 것이다

이것이 태곳적부터 이어져 온 삶의 리듬이다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앗아간다

나는 이 죽은 이들을 내 안에 품고 살아간다

나 역시 떠나는 날까지 그들을 품고 갈 것이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하는지 일깨워준다

삶은 성스럽고 사랑은 언제나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언젠가는 우리가 품고 있는 기억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로, 15년 동안 뉴욕타임스의 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중동 지국장과 발칸 지국장을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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