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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겁내지마

2026. 03. 17. 오후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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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은 꼭 거창할 필요가 없다. 낯선 음식을 먹는 순간부터, 방 밖을 나서는 한 걸음,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순간까지. 모양도 크기도 다르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용기가 있다. 지금, 각자의 방식으로 도전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쇼킹 필리핀! 레촌과 발롯에 도전!>

현지인처럼 영어를 말하는 나, 지상낙원에서 뛰노는 나를 꿈꾸며 필리핀으로 향했다. 막상 그곳은 끝없이 나를 테스트하는 실험장 같았다. 특히 현지 음식을 먹기가 너무나 괴로웠다. 한국의 매콤하고 얼큰한 맛과 달리 그곳 음식은 유달리 달고 시큼했다. 필리핀은 덥고 습한 기후 때문에 음식 보존의 이유로 식초를 많이 사용하는데 시큼한 국물, 시큼한 생선 요리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전라도 잔치에 홍어가 있듯, 필리핀의 잔치엔 레촌과 발롯이 빠지지 않았다. 어린 돼지를 통째 숯불에 구워낸 통돼지 구이가 레촌, 부화 직전에 삶은 오리알은 발롯이라고 하는데, 맛은 둘째치고 비주얼이 꽤나 끔찍했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집에 초대를 받으면 싫은 기색을 감추고 먹는 도전을 했다. 어느덧 혀는 맛에 적응하고, 내 마음은 필리핀 사람들의 따뜻함에 물들어갔다.

<당황스러움의 연속, 나를 성장시킨 아프리카>

TV에서 보던 열악한 아프리카를 상상하며 왔는데 처음 수도 캄팔라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은 예상보다 괜찮았다. 하지만 살면 살수록 ‘역시 아프리카는 아프리카구나.’라고 느꼈다. 가장 어려웠던 건, 느닷없는 단수였다. 한국에서는 수돗물이 사전 예고 없이 안 나온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 이 나라에서는 단수나 정전이 꽤나 잦았다. 정전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이지만, 손전등을 켜면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하지만 물이 끊기면 양동이를 들고 물이 나오는 지역까지 걸어가서 물을 받아와야 했다. 물이 얼마나 무거운지, 또 아까운 물을 길에 흘리지 않으려면 조용조용 걸음을 옮겨야 했다. 운 나쁘게 물 길어오는 곳마저 단수가 되면 그날은 아예 쓸 물이 사라졌다. 양치도 못하고 언제 나올지 모르는 물을 막연히 기다리는 일밖에 할 게 없다. 특히 화장실을 사용하는 도중 단수가 되면 그것만큼 당황스러운 일도 없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무척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나 반대로 그만큼 좋았던 것들도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라와 준 학생들 그리고 도전할 수 있는 경험들이 훨씬 나를 성장시켜주었다.

<돌아온 후의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해외봉사에 가기 전 나는 세탁기조차 돌릴 줄 몰랐다. 전기밥솥으로 밥을 안치는 것도, 음식의 간을 맞추는 일은 더더욱 몰랐다. ‘학생이니까 공부만 하면 된다.’는 말로 나를 합리화하며 살아왔다. 해외봉사에 갔는데 청소하고 빨래하고 세 끼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기본이었다. 잘하는 게 없는 내가 너무 초라했다. 한편으로 ‘내가 이걸 하려고 여기 왔나.’ 싶어 반항심에 대충대충 했더니 성의 없다고 야단도 맞았다. 봉사 활동을 완료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나는 실패했다.’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후의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부터 개고 있었다. 주변을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고 공간이 정돈되자 마음이 이내 차분해져 일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실패라고 여겼던 그 시간이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프랑스어로 마구 내뱉고 있는 나를 보다!>

해외봉사에서 처음 마주한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였다. 프랑스어는 내게 너무나 생소하고 어려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단어나 문법을 충분히 공부한 후 봉사하길 원했지만, 언어는 현장에서 부딪치며 배우는 것이라며 지부장님은 우리를 사람들과 만나도록 계속 밖으로 등떠밀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레 종이에 적어온 문장을 힐끔거리며 말하다가 준비한 이야기가 다 떨어지면 그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런 어색하고 답답한 순간들이 반복되었지만, 점차 두려움을 내려놓고 말이 되든 안되는 계속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나중엔 문법이나 발음을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내뱉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오히려 상대방이 알아서 해석해 들어야 하는 이상야릇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런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으면서 소통의 벽이 허물어졌고, 지금은 프랑스어로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

‘발라카’라는 시골로 무전여행을 떠났다. 길을 헤매던 중 한 아주머니께서 먼저 말을 걸어오셨다. 한국에서 온 봉사단이라는 말에 식사를 대접해 주고 싶다며 집으로 초대하셨다. 아주머니를 따라간 곳에는 판자로 하늘을 겨우 가린 집 한 채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냉장고는 커녕 화장실도 없었고, 물은 멀리서 길어 와야 했다. 우리 집도 어렵게 산다고 생각했지만,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열악했다. 그런데도 아주머니의 표정과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꾸며낸 미소가 아닌, 삶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이 담겨 있었다.

나는 돈 걱정 없이 사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가지고 있던 행복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지만 가난하다는 생각 속에 나 자신을 가두고 있었다. 그 마음을 혼자 붙잡아 두는 동안 내 마음은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었고, 그 탓에 행복이 스며들 자리가 없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묵묵히 나를 응원해 주고 배려해 주던 가족들, 그리고 나와 함께해 주는 많은 친구들. 내 주변엔 행복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로 가득했음을 그제야 알았다.

<예상치 못한 도전, 예상치 못한 기쁨>

나는 늘 뭔가에 도전하는 것이 서툴렀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보단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무전여행에서는 모든 것이 도전 자체였다. 학교에 찾아가 프로그램 진행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어려웠고, ‘No money’ 원칙을 따라 밥을 먹는 것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모두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부담스러운 일들에 도전할 때면 예상치 못했던 기쁨도 함께 찾아왔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도움을 얻을 때 기뻤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좋은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무척 행복했다.

우리는 ‘라유니온’에서 7일간 머무르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첫날 버스 편을 알아봐준 경찰관부터 마지막 강연을 했던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모두가 소중하고 그립다. 무전여행은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며, 1년간 해외봉사를 떠나 느꼈던 것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필리핀에서 어려운 일,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늘 시작은 두렵고 힘들었지만 그 일에 뛰어들었을 땐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가치를 얻었다.

우리 단원들은 푸에르토리코 국립묘지에 안치된 한국전 참전용사분들의 묘역을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또한 5월에는 메모리얼 데이 국가행사에 참석해 한국을 대표하여 감사 인사를 전하고, 아리랑을 연주한다. 이외에도 해변 정화 활동, 교육·태권도 봉사, K-콘텐츠를 알리는 다양한 문화교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푸에르토리코 현지 방송국에 초대받아, 우리의 이런 활동 내용을 소개하는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방송 출연은 처음이라 많이 떨렸다. 하지만, 우리가 해온 활동을 알리는 자리인 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인터뷰에 임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너무 특별한 경험이었다.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에서 활동할 때였다. 현지 친구들은 케이팝 아이돌에 대해 한국인인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우리는 문화 교류 행사로 ‘코리안 데이’를 준비했다. 한국 문화 체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했고, 나는 케이팝 댄스 공연에 참여했다. 기왕 댄스를 할 거라면 최대한 잘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았다. 이렇게 춤을 춘다면 사람들이 비웃을 것 같았다. 그런 내 마음이 드러났는지 행사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지부장님이 말씀하셨다.

“연지야, 너의 부족함을 보는 눈을 내려놓고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바라봐. 그들이 보는 건 너의 완벽한 실력이 아니라 한국 문화를 경험하는 즐거움과 그걸 전달하는 네 밝은 표정이야.”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나는 ‘나’라는 하나의 나무만 바라보고 있었지, 사람들의 즐거움이라는 숲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으로 초점을 맞추자 나의 부족함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댄스 연습에 임했고, 코리안 데이 당일엔 1,000여 명의 현지인 앞에서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케이팝 댄스를 신나게 선보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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