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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 김해] 보호·지원 대상서 ‘함께 사는 이웃’으로
2026. 04. 05. 오후 11:44
75청소년, 95% 진학·79% 취업 ‘희망’
정착 위한 교육·진로·고용 연계 시급
‘상호문화도시’ 아산·김포 조례 정비
“싫어서 불편한 게 아니라, 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얘기가 없으니까 답답한 것.” 내외동 상인 E씨의 말은 김해의 현주소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88개국 3만2000명의 외국인이 이 도시에서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장을 보고, 세금을 낸다. 김해의 다문화는 이미 일상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얼마나 더 들어오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사느냐’다.
현실은 이미 분명하다. 제조업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공장을 정상 가동하는 핵심 동력이 됐고, 정주와 가족 동반 이주도 뚜렷한 증가세다. 교실에서는 22개국 아이들이 한 반에 앉아 수업을 듣지만, 교육·노동·복지 행정은 각각 따로 움직이고 이주민은 창구 사이를 오가며 같은 설명을 반복한다.
폭발하는 수요와 달리 현장 인프라는 한계에 다다랐다.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는 연간 1만8400건의 상담을 소화하면서도 2008년 개소 이후 시설 개보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최근 지원 방식 변경으로 예산과 인력마저 줄었다. 종사자들의 헌신으로 버티고 있지만, 현장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난해 11월 가야대에서 열린 제10회 공동학술대회 ‘다문화 사회를 넘어 상호문화 사회로’ 세미나에서 손지아 교수(왼쪽 첫 번째)가 좌장을 맡고, 우즈베키스탄·러시아·필리핀·네팔 출신 토론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가야대/
김해연구원 최나리 박사가 제시한 교육통계에 따르면, 김해의 다문화 아동·청소년은 2020년 1925명에서 2025년 3097명으로 5년 새 1.6배 증가했다. 전체 아동·청소년 중 비율도 2.48%에서 4.34%로 올랐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의 의지다. 다문화청소년패널조사(2024)에서 한국에서의 진학 희망 비율은 94.6%, 취업 희망은 78.7%에 달했다. 이 아이들은 이 도시를 떠날 생각이 없다. 도시가 이들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가 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지원 확대’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일방적인 지원이 늘수록 ‘특혜’ 논란이 뒤따르고, 정보가 끊기면 오해는 더 커진다. 가야대 손지아 교수는 “이주민은 보호와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네 주민이자 이웃”이라며 “이주민과 정주민이 함께하는 공동의 활동과 경험이 많아져야 정서적 거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해에 필요한 과제는 크게 네 가지로 수렴된다.
첫째, 데이터 정합이다. 외국인 주민, 근로자, 다문화가족, 이주배경 학생 등 기관마다 흩어진 통계를 통합해 생활권 단위의 수요를 분기별로 갱신해야 한다. 부처마다 기준이 달라 규모 파악이 어렵고, 중도입국 청소년처럼 현황 자체가 안 잡히는 집단은 사각지대에 놓인다.
둘째, 전담 거버넌스 구축이다. 산업·고용·복지·교육·주거가 분리된 채로는 현장의 복합적인 문제를 풀 수 없다. 인제대 다이음센터가 지난 2월 7개 기관 협의체를 가동하며 첫발을 뗐지만, 대학 주도의 시범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 행정 차원의 상설 협의체로 격상해 책임 구조를 분명히 해야 한다. 안산시가 국장급 본부장 아래 전담 조직을 운영하고, 시흥시가 외국인주민과를 별도로 둔 것은 김해가 참조할 수 있는 모델이다.
셋째, 생활권 상시 거점이다. 산단과 주거 밀집지에 노무·산재·의료·통번역을 하나로 묶은 원스톱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진영권역 등 1곳을 시범 운영하며 성과 지표를 측정한 뒤 확대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최나리 박사는 “생활 인프라가 사회통합 성패를 좌우한다”고 짚었다.
넷째, 교실 이후의 설계다. 다이음센터의 ‘환급학생’ 학습 한국어 프로그램이 올해 진영 지역으로 확대되지만, 이는 출발점일 뿐이다. 최나리 박사는 3단계 패키지를 제안했다. 초등 저학년에서는 기초문해·교과언어(KSL)와 부모 코칭을 묶은 조기 개입, 초6·중3 전환기에는 학습 튜터링·정서상담·진로탐색을 결합한 집중 지원, 중도입국 청소년에게는 한국어·학교적응·심리정서·진로를 한 묶음으로 제공하는 별도 트랙이다. 다문화 아동·청소년은 학업 중단 비율이 높은데, 학교 밖으로 나간 이들은 현황 파악조차 어려운 만큼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일에 김해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내 대기실이 상담을 기다리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가득 차 있다./김해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흩어진 지원을 하나의 흐름으로 조정하고,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구조도 필요하다.
인제대 신성희 교수는 7개 기관 협의체를 상설화하는 동시에 상호문화도시 지표(ICC)를 활용해 정책을 점검·분석하는 체계 도입을 제안했다. 2024년 유럽평의회 상호문화도시 프로그램에 가입한 아산시, 2025년 상호문화도시를 선포한 김포시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포시는 조례를 개정해 시장의 책무를 명문화했고, 아산시는 사무국으로부터 지수 분석과 자문을 받았다. 조례 정비에서 외부 진단, 정책 재설계로 이어지는 이들의 경로는 김해도 충분히 참조할 수 있다.
박종주 김해시 문화국장은 “다문화 주민 1만3000여 명은 김해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소중한 자산”이라며 “소통 행정으로 원주민과 다문화 주민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최나리 박사는 “외국인 주민을 도시 구성원으로 전제하고, 통계·교육·주거·행정 서비스를 현실에 맞게 전면 재설계하지 않으면 공존의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도시 경쟁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못 박았다.
이종훈 기자 leej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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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서 불편한 게 아니라, 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얘기가 없으니까 답답한 것.” 내외동 상인 E씨의 말은 김해의 현주소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88개국 3만2000명의 외국인이 이 도시에서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장을 보고, 세금을 낸다. 김해의 다문화는 이미 일상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얼마나 더 들어오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사느냐’다.
현실은 이미 분명하다. 제조업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공장을 정상 가동하는 핵심 동력이 됐고, 정주와 가족 동반 이주도 뚜렷한 증가세다. 교실에서는 22개국 아이들이 한 반에 앉아 수업을 듣지만, 교육·노동·복지 행정은 각각 따로 움직이고 이주민은 창구 사이를 오가며 같은 설명을 반복한다.
폭발하는 수요와 달리 현장 인프라는 한계에 다다랐다.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는 연간 1만8400건의 상담을 소화하면서도 2008년 개소 이후 시설 개보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최근 지원 방식 변경으로 예산과 인력마저 줄었다. 종사자들의 헌신으로 버티고 있지만, 현장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난해 11월 가야대에서 열린 제10회 공동학술대회 ‘다문화 사회를 넘어 상호문화 사회로’ 세미나에서 손지아 교수(왼쪽 첫 번째)가 좌장을 맡고, 우즈베키스탄·러시아·필리핀·네팔 출신 토론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가야대/
김해연구원 최나리 박사가 제시한 교육통계에 따르면, 김해의 다문화 아동·청소년은 2020년 1925명에서 2025년 3097명으로 5년 새 1.6배 증가했다. 전체 아동·청소년 중 비율도 2.48%에서 4.34%로 올랐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의 의지다. 다문화청소년패널조사(2024)에서 한국에서의 진학 희망 비율은 94.6%, 취업 희망은 78.7%에 달했다. 이 아이들은 이 도시를 떠날 생각이 없다. 도시가 이들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가 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지원 확대’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일방적인 지원이 늘수록 ‘특혜’ 논란이 뒤따르고, 정보가 끊기면 오해는 더 커진다. 가야대 손지아 교수는 “이주민은 보호와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네 주민이자 이웃”이라며 “이주민과 정주민이 함께하는 공동의 활동과 경험이 많아져야 정서적 거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해에 필요한 과제는 크게 네 가지로 수렴된다.
첫째, 데이터 정합이다. 외국인 주민, 근로자, 다문화가족, 이주배경 학생 등 기관마다 흩어진 통계를 통합해 생활권 단위의 수요를 분기별로 갱신해야 한다. 부처마다 기준이 달라 규모 파악이 어렵고, 중도입국 청소년처럼 현황 자체가 안 잡히는 집단은 사각지대에 놓인다.
둘째, 전담 거버넌스 구축이다. 산업·고용·복지·교육·주거가 분리된 채로는 현장의 복합적인 문제를 풀 수 없다. 인제대 다이음센터가 지난 2월 7개 기관 협의체를 가동하며 첫발을 뗐지만, 대학 주도의 시범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 행정 차원의 상설 협의체로 격상해 책임 구조를 분명히 해야 한다. 안산시가 국장급 본부장 아래 전담 조직을 운영하고, 시흥시가 외국인주민과를 별도로 둔 것은 김해가 참조할 수 있는 모델이다.
셋째, 생활권 상시 거점이다. 산단과 주거 밀집지에 노무·산재·의료·통번역을 하나로 묶은 원스톱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진영권역 등 1곳을 시범 운영하며 성과 지표를 측정한 뒤 확대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최나리 박사는 “생활 인프라가 사회통합 성패를 좌우한다”고 짚었다.
넷째, 교실 이후의 설계다. 다이음센터의 ‘환급학생’ 학습 한국어 프로그램이 올해 진영 지역으로 확대되지만, 이는 출발점일 뿐이다. 최나리 박사는 3단계 패키지를 제안했다. 초등 저학년에서는 기초문해·교과언어(KSL)와 부모 코칭을 묶은 조기 개입, 초6·중3 전환기에는 학습 튜터링·정서상담·진로탐색을 결합한 집중 지원, 중도입국 청소년에게는 한국어·학교적응·심리정서·진로를 한 묶음으로 제공하는 별도 트랙이다. 다문화 아동·청소년은 학업 중단 비율이 높은데, 학교 밖으로 나간 이들은 현황 파악조차 어려운 만큼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일에 김해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내 대기실이 상담을 기다리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가득 차 있다./김해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흩어진 지원을 하나의 흐름으로 조정하고,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구조도 필요하다.
인제대 신성희 교수는 7개 기관 협의체를 상설화하는 동시에 상호문화도시 지표(ICC)를 활용해 정책을 점검·분석하는 체계 도입을 제안했다. 2024년 유럽평의회 상호문화도시 프로그램에 가입한 아산시, 2025년 상호문화도시를 선포한 김포시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포시는 조례를 개정해 시장의 책무를 명문화했고, 아산시는 사무국으로부터 지수 분석과 자문을 받았다. 조례 정비에서 외부 진단, 정책 재설계로 이어지는 이들의 경로는 김해도 충분히 참조할 수 있다.
박종주 김해시 문화국장은 “다문화 주민 1만3000여 명은 김해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소중한 자산”이라며 “소통 행정으로 원주민과 다문화 주민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최나리 박사는 “외국인 주민을 도시 구성원으로 전제하고, 통계·교육·주거·행정 서비스를 현실에 맞게 전면 재설계하지 않으면 공존의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도시 경쟁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못 박았다.
이종훈 기자 leej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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