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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주 현무암 매력에 푹…옷만 잘 입는 ‘베짱이’ 아니죠
2026. 05. 09. 오전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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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돌문화’ 기록하는 김용호 사진가
제주 숲을 배경으로 서 있는 사진가 김용호. [사진 김용호]
‘현무암’이라 불리는 제주의 검은 돌은 지질학적 가치를 넘어 제주와 제주 사람들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용암이 식으면서 가스가 빠져나가 생긴 구멍 때문에 언뜻 거칠고 차가운 돌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구멍 때문에 강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밭과 밭 사이를 가르는 ‘밭담’은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지형을 해치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기교 없이 단순한 선으로 묘사한 돌하르방과 동자석은 기복신앙과 해학을 품고 있다. 그렇게 제주에는 제주만의 돌문화가 쌓여 있다.
4월 25일부터 7월 26일까지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사진가 김용호의 사진·영상전 ‘남국재견南國再見: 제주, 다시 보다-유현’은 바로 이 제주의 돌문화를 통해 한국의 미학을 새롭게 찾아볼 것을 제안한다. 제주돌문화공원 개원 20주년을 맞아 준비한 특별기획전으로 제주와 돌문화공원 구석구석을 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제1전시실부터 5전시실까지 채워졌다. 지난달 23일 전시장에서 사진가 김용호(70)를 만났다. 그는 현대카드, 현대자동차, KT, 삼성전자 등의 광고 사진을 찍고 패션지 보그, 바자의 화보도 수년 간 촬영했다. 파인아트 사진이 아닌, 광고와 화보 사진으로 미술관에서 전시까지 연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7월 26일까지 ‘남국재견:제주’ 전시회
Q : 이번 전시에는 오래된 인연이 있다고요.
“35년 전 연극배우 박정자 선생이랑 ‘목석원’에 처음 방문했는데 ‘뭐 이런 곳이 다 있지!’ 감탄했지만 곧 잊어버렸어요. 6년 전 박 선생의 남편인 이지송 감독이 ‘돌문화공원 가봤냐’ 물었을 때 불현듯 생각나서 다시 가보니 여전히 감동적이더군요. 이곳을 촬영한 사진집이 없길래 ‘내가 만들자’ 생각하고 재차 방문하면서 혼자 촬영 중이었는데, 2년 전 돌문화공원 측에서 개원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시선을 가진 사진가를 찾는다고 연락이 오면서 본격적으로 사계절 풍경을 작업했죠.”
김용호는 연극배우 박정자, 그리고 그의 남편인 이 감독과 각별하다. 지난해 5월 강릉 순포해변에서 박 배우가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 촬영을 위해 ‘사전 장례식’을 열었을 때, 김용호는 그녀가 특별히 언급한 ‘인생 남자친구들’ 중 한 명으로 호명되기도 했다. 그 자리에는 남편인 이 감독도 있었다. 세 사람은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 등과 종종 만나 함께 식사하며 공연과 전시를 보는 오래 된 사이다. 몇 해 전에는 일본 교토에 다녀오는 길에 “우아한 레이디들에게 어울리는 선물”로 장인이 만든 여치 집 두 개를 양손에 직접 들고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Q : 제주 돌문화공원의 어떤 점이 감동적이었나요.
“이곳에 놓인 돌 조형물들은 제주 곳곳에서 옮겨오거나 인위적으로 돌들을 쌓아 만든 거예요. 그런데 20년이 흘러 이제는 마치 그 자리에 처음부터 그 모습으로 있었던 것처럼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죠. 영국의 스톤헨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가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결국 인간이 만든 조형물이잖아요. 이곳도 이제 그 긴 역사를 시작하는구나 생각했죠.”
눈보라 속에서 촬영한 제주돌문화공원 조형물을 10m 길이 파노라마로 이어 붙였다. [사진 김용호]
제주돌문화공원은 제주만의 독특한 돌문화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야외 전시장에는 48기의 돌하르방, 사악한 기운과 액운을 몰아낸다는 방사탑, 도둑이 없어 대문도 없다는 제주의 상징인 정주석, 무덤 주위에 세워 망자의 한을 달래준다는 동자석 등 다양한 형태의 돌 조형물이 들어서 있다. 김용호는 이 풍경들을 찍으면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는 ‘유현(幽玄)의 미학’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번 작업에 ‘유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기도 하다.
무덤 옆을 지키는 동자석 '제주인의 얼굴, 한국인의 얼굴'. [사진 김용호]
“우연히 촬영한 사진에서 돌이 쌓인 모습이 검을 현(玄)으로 보였어요. 오래전 읽었던 기록들에서 ‘유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죠. 그윽할 유(幽), 검을 현(玄)은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아득하고 고요한, 언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말해요. 말로는 또렷이 규정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 조용히 스며드는 아름다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깊이의 아름다움이죠. 눈보라와 안개 속에서 만난 검은 돌 조형들은 형태를 명확하게 보여주진 않았지만 계속 오래 천천히 들여다볼수록 경외감을 갖게 했죠. 그게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유현(幽玄)' 작업의 대표작품. 돌이 쌓인 모습이 검을 현(玄)을 닮았다. [사진 김용호]
‘한국의 미’는 그가 오랫동안 고민 중인 숙제다. 서양 사람들이 일본의 ‘젠(ZEN·禪)’을 이해할 때 교토 료안지의 돌정원 ‘가레산스이(枯山水)’를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처럼, 한국의 미를 정의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계속 찾고 있다. 이번에 만난 제주의 돌문화와 ‘유현의 미학’도 그 중 하나다.
Q : 한지에 프린트를 한 것은 ‘신의 한 수’입니다.
“물속에서 올려다본 연꽃 ‘피안(2011년)’을 전시할 때 한지에 프린트를 처음 했는데 이후에는 못 했어요. 당시 한지는 보풀이 심해서 프린터를 망가뜨렸거든요. 5~6년 전부터 한지 품질이 좋아져서 사진가들이 부쩍 많이 사용하죠. 잉크가 종이에 깊이 스며들어서 오묘한 색감을 내는 데다, 눈 오는 날 사진에선 검은 돌의 대비가 묘하게 깊은 여운을 남겨서 ‘유현의 미학’을 표현하기가 훨씬 쉬웠어요.”
김용호의 ‘유현’은 오는 9월 파리의 호텔 ‘드 라 마린’에서 열리는 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 전시에 초청받았다. 이때도 역시 한지에 프린트를 할 터이고, 우리 고유의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아름다움과 함께 한지의 우수성을 알릴 기회다. 사실 김용호의 작업에는 ‘선견지명’ 또는 ‘운빨’이 존재한다. 돌이 쌓인 모습이 한자로 보이거나, 15년 전에 이미 한지 프린트를 시도하거나. ‘피안(彼岸)’ 작업을 하게 된 과정도 그렇다. ‘조선민화전’을 보다가 물속에서 바라보는 연은 어떨까 상상했다고 한다. 그 상상력이 실전으로 옮겨진 건 50대에 구매해둔 잠수복 덕분이다. 잡지 내셔널지오 그래픽이 국내에서 다이버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수중 촬영에 호기심이 동해 응모했는데 비싼 학습비와 긴 일정 때문인지 다른 응모자는 없었다. 덕분에 필리핀에서 진행된 다이버 교육에 혼자 참가했다. “다섯 명의 국내외 전문 다이버들에게 ‘황제 교육’을 받은 셈”이다. 그 선견지명으로 창고에 처박혀 있던 잠수복을 연꽃 촬영을 위해 꺼내 입었다.
Q : 70의 나이에도 커머셜과 파인아트 모두에서 성공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내 작업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보이지 않을까 고민도 돼요. 몸, 피안, 유현 등 다양한 주제로 작업하는데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사진가를 더 깊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Q : ‘멋쟁이 신사 김용호’ 때문에 ‘사진가 김용호’가 묻히기는 합니다.
“내가 옷을 좀 챙겨 입고 다니다 보니 매일 파티에 초대돼 샴페인과 더불어 놀기만 하는 ‘베짱이 사진가’로 보이는 게 문제긴 하죠.(웃음)”
김용호는 사진가를 겸하면서 1990년대 카페 ‘플로라’를 열고 청담동 카페 문화를 선도했다. 그곳에 가면 당시 잘 나가는 배우 이정재·정우성 등을 볼 수 있었다. 2009년에는 윤여정·고현정·김민희 등이 실명으로 출연한 영화 ‘여배우’에선 배우로도 열연했다. 전시를 열 때마다 사진뿐 아니라 공간기획, 음악선정·연출까지 하고 이젠 영상 촬영으로 칸 영화제까지 두드린다.
정우성·이정재 단골, 청담동 카페 운영도
Q : 옷을 대충 입어보는 건 어떨까요.
“얼마 전 OMA의 장지우 디자이너도 그러더군요.(웃음) 사실 특별한 건 없어요. 오래 전 산 무지 옷을 여전히 입고 다닐 만큼 옷이 많지도 않고. 핵심은 내가 정말 좋아하고 내게 잘 어울리는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도록 몸을 유지하는 거예요.”
몇 년 전 자동차를 없앤 그는 잠원동 작업실에서 청담동까지 가뿐하게 걸어 다닌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서도 절대 의자에 앉지 않는다. 대신 손잡이를 잡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까치발을 들었다 올리기를 반복한다. “하나만 파고드는 건 재미가 없어 다양한 것에 호기심을 둔다”는 그는 스스로를 늘 준비된 상태에 둔다. 체력이든 사진이든. 여러 주제에 호기심을 갖는 것도 습관적으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미술관에 가면서 부지런히 저장해둔 이미지와 문장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Q : ‘포토 랭귀지(Photo Language)’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내가 만든 용어에요. 셔터를 누르기 전에 이야기를 먼저 상상하고 그것을 이미지로 구성하는 건데, 사진을 단순한 기록이나 재현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사진가가 새롭게 재해석한다는 뜻이죠.”
사계절, 밤낮 동안 수천 장을 찍어 고른 제주의 돌 사진들은 사진가 김용호에 의해 어떻게 재해석 됐을까. 한눈에 잘 보이지 않는 한국의 고요한 아름다움은 어떤 모습으로 제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제주 숲을 배경으로 서 있는 사진가 김용호. [사진 김용호]
‘현무암’이라 불리는 제주의 검은 돌은 지질학적 가치를 넘어 제주와 제주 사람들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용암이 식으면서 가스가 빠져나가 생긴 구멍 때문에 언뜻 거칠고 차가운 돌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구멍 때문에 강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밭과 밭 사이를 가르는 ‘밭담’은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지형을 해치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기교 없이 단순한 선으로 묘사한 돌하르방과 동자석은 기복신앙과 해학을 품고 있다. 그렇게 제주에는 제주만의 돌문화가 쌓여 있다.
4월 25일부터 7월 26일까지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사진가 김용호의 사진·영상전 ‘남국재견南國再見: 제주, 다시 보다-유현’은 바로 이 제주의 돌문화를 통해 한국의 미학을 새롭게 찾아볼 것을 제안한다. 제주돌문화공원 개원 20주년을 맞아 준비한 특별기획전으로 제주와 돌문화공원 구석구석을 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제1전시실부터 5전시실까지 채워졌다. 지난달 23일 전시장에서 사진가 김용호(70)를 만났다. 그는 현대카드, 현대자동차, KT, 삼성전자 등의 광고 사진을 찍고 패션지 보그, 바자의 화보도 수년 간 촬영했다. 파인아트 사진이 아닌, 광고와 화보 사진으로 미술관에서 전시까지 연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7월 26일까지 ‘남국재견:제주’ 전시회
Q : 이번 전시에는 오래된 인연이 있다고요.
“35년 전 연극배우 박정자 선생이랑 ‘목석원’에 처음 방문했는데 ‘뭐 이런 곳이 다 있지!’ 감탄했지만 곧 잊어버렸어요. 6년 전 박 선생의 남편인 이지송 감독이 ‘돌문화공원 가봤냐’ 물었을 때 불현듯 생각나서 다시 가보니 여전히 감동적이더군요. 이곳을 촬영한 사진집이 없길래 ‘내가 만들자’ 생각하고 재차 방문하면서 혼자 촬영 중이었는데, 2년 전 돌문화공원 측에서 개원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시선을 가진 사진가를 찾는다고 연락이 오면서 본격적으로 사계절 풍경을 작업했죠.”
김용호는 연극배우 박정자, 그리고 그의 남편인 이 감독과 각별하다. 지난해 5월 강릉 순포해변에서 박 배우가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 촬영을 위해 ‘사전 장례식’을 열었을 때, 김용호는 그녀가 특별히 언급한 ‘인생 남자친구들’ 중 한 명으로 호명되기도 했다. 그 자리에는 남편인 이 감독도 있었다. 세 사람은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 등과 종종 만나 함께 식사하며 공연과 전시를 보는 오래 된 사이다. 몇 해 전에는 일본 교토에 다녀오는 길에 “우아한 레이디들에게 어울리는 선물”로 장인이 만든 여치 집 두 개를 양손에 직접 들고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Q : 제주 돌문화공원의 어떤 점이 감동적이었나요.
“이곳에 놓인 돌 조형물들은 제주 곳곳에서 옮겨오거나 인위적으로 돌들을 쌓아 만든 거예요. 그런데 20년이 흘러 이제는 마치 그 자리에 처음부터 그 모습으로 있었던 것처럼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죠. 영국의 스톤헨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가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결국 인간이 만든 조형물이잖아요. 이곳도 이제 그 긴 역사를 시작하는구나 생각했죠.”
눈보라 속에서 촬영한 제주돌문화공원 조형물을 10m 길이 파노라마로 이어 붙였다. [사진 김용호]
제주돌문화공원은 제주만의 독특한 돌문화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야외 전시장에는 48기의 돌하르방, 사악한 기운과 액운을 몰아낸다는 방사탑, 도둑이 없어 대문도 없다는 제주의 상징인 정주석, 무덤 주위에 세워 망자의 한을 달래준다는 동자석 등 다양한 형태의 돌 조형물이 들어서 있다. 김용호는 이 풍경들을 찍으면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는 ‘유현(幽玄)의 미학’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번 작업에 ‘유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기도 하다.
무덤 옆을 지키는 동자석 '제주인의 얼굴, 한국인의 얼굴'. [사진 김용호]
“우연히 촬영한 사진에서 돌이 쌓인 모습이 검을 현(玄)으로 보였어요. 오래전 읽었던 기록들에서 ‘유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죠. 그윽할 유(幽), 검을 현(玄)은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아득하고 고요한, 언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말해요. 말로는 또렷이 규정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 조용히 스며드는 아름다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깊이의 아름다움이죠. 눈보라와 안개 속에서 만난 검은 돌 조형들은 형태를 명확하게 보여주진 않았지만 계속 오래 천천히 들여다볼수록 경외감을 갖게 했죠. 그게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유현(幽玄)' 작업의 대표작품. 돌이 쌓인 모습이 검을 현(玄)을 닮았다. [사진 김용호]
‘한국의 미’는 그가 오랫동안 고민 중인 숙제다. 서양 사람들이 일본의 ‘젠(ZEN·禪)’을 이해할 때 교토 료안지의 돌정원 ‘가레산스이(枯山水)’를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처럼, 한국의 미를 정의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계속 찾고 있다. 이번에 만난 제주의 돌문화와 ‘유현의 미학’도 그 중 하나다.
Q : 한지에 프린트를 한 것은 ‘신의 한 수’입니다.
“물속에서 올려다본 연꽃 ‘피안(2011년)’을 전시할 때 한지에 프린트를 처음 했는데 이후에는 못 했어요. 당시 한지는 보풀이 심해서 프린터를 망가뜨렸거든요. 5~6년 전부터 한지 품질이 좋아져서 사진가들이 부쩍 많이 사용하죠. 잉크가 종이에 깊이 스며들어서 오묘한 색감을 내는 데다, 눈 오는 날 사진에선 검은 돌의 대비가 묘하게 깊은 여운을 남겨서 ‘유현의 미학’을 표현하기가 훨씬 쉬웠어요.”
김용호의 ‘유현’은 오는 9월 파리의 호텔 ‘드 라 마린’에서 열리는 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 전시에 초청받았다. 이때도 역시 한지에 프린트를 할 터이고, 우리 고유의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아름다움과 함께 한지의 우수성을 알릴 기회다. 사실 김용호의 작업에는 ‘선견지명’ 또는 ‘운빨’이 존재한다. 돌이 쌓인 모습이 한자로 보이거나, 15년 전에 이미 한지 프린트를 시도하거나. ‘피안(彼岸)’ 작업을 하게 된 과정도 그렇다. ‘조선민화전’을 보다가 물속에서 바라보는 연은 어떨까 상상했다고 한다. 그 상상력이 실전으로 옮겨진 건 50대에 구매해둔 잠수복 덕분이다. 잡지 내셔널지오 그래픽이 국내에서 다이버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수중 촬영에 호기심이 동해 응모했는데 비싼 학습비와 긴 일정 때문인지 다른 응모자는 없었다. 덕분에 필리핀에서 진행된 다이버 교육에 혼자 참가했다. “다섯 명의 국내외 전문 다이버들에게 ‘황제 교육’을 받은 셈”이다. 그 선견지명으로 창고에 처박혀 있던 잠수복을 연꽃 촬영을 위해 꺼내 입었다.
Q : 70의 나이에도 커머셜과 파인아트 모두에서 성공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내 작업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보이지 않을까 고민도 돼요. 몸, 피안, 유현 등 다양한 주제로 작업하는데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사진가를 더 깊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Q : ‘멋쟁이 신사 김용호’ 때문에 ‘사진가 김용호’가 묻히기는 합니다.
“내가 옷을 좀 챙겨 입고 다니다 보니 매일 파티에 초대돼 샴페인과 더불어 놀기만 하는 ‘베짱이 사진가’로 보이는 게 문제긴 하죠.(웃음)”
김용호는 사진가를 겸하면서 1990년대 카페 ‘플로라’를 열고 청담동 카페 문화를 선도했다. 그곳에 가면 당시 잘 나가는 배우 이정재·정우성 등을 볼 수 있었다. 2009년에는 윤여정·고현정·김민희 등이 실명으로 출연한 영화 ‘여배우’에선 배우로도 열연했다. 전시를 열 때마다 사진뿐 아니라 공간기획, 음악선정·연출까지 하고 이젠 영상 촬영으로 칸 영화제까지 두드린다.
정우성·이정재 단골, 청담동 카페 운영도
Q : 옷을 대충 입어보는 건 어떨까요.
“얼마 전 OMA의 장지우 디자이너도 그러더군요.(웃음) 사실 특별한 건 없어요. 오래 전 산 무지 옷을 여전히 입고 다닐 만큼 옷이 많지도 않고. 핵심은 내가 정말 좋아하고 내게 잘 어울리는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도록 몸을 유지하는 거예요.”
몇 년 전 자동차를 없앤 그는 잠원동 작업실에서 청담동까지 가뿐하게 걸어 다닌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서도 절대 의자에 앉지 않는다. 대신 손잡이를 잡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까치발을 들었다 올리기를 반복한다. “하나만 파고드는 건 재미가 없어 다양한 것에 호기심을 둔다”는 그는 스스로를 늘 준비된 상태에 둔다. 체력이든 사진이든. 여러 주제에 호기심을 갖는 것도 습관적으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미술관에 가면서 부지런히 저장해둔 이미지와 문장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Q : ‘포토 랭귀지(Photo Language)’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내가 만든 용어에요. 셔터를 누르기 전에 이야기를 먼저 상상하고 그것을 이미지로 구성하는 건데, 사진을 단순한 기록이나 재현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사진가가 새롭게 재해석한다는 뜻이죠.”
사계절, 밤낮 동안 수천 장을 찍어 고른 제주의 돌 사진들은 사진가 김용호에 의해 어떻게 재해석 됐을까. 한눈에 잘 보이지 않는 한국의 고요한 아름다움은 어떤 모습으로 제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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