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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딸은 장애인입니다 필리핀에서 이 대통령을 만나 전한 말
2026. 05. 25. 오전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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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동포들, 한국 장애인 등록시 어려움 겪어... 동포 간담회 때 대통령에게 전했던 고충, 답변을 받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4년, 나는 다국적기업의 한국 법인에서 필리핀 법인으로 자리를 옮기며 필리핀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조금 늦은 결혼이었지만 그만큼 싱글라이프를 만끽했고, 2011년 크리스마스이브, 함박눈이 축복처럼 내리던 날 결혼식을 올렸다.
곧이어 2013년 6월 태어난 첫째 딸아이가 생후 9개월이 되었을 때 우리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다운증후군'이라는 확진 결과를 마주했다.
감사하게도 아직까지는 필리핀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며 큰 불편이나 차별을 겪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 한국에 있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장애인 등록'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필리핀의 PWD(People with Disabilities) 카드는 자국민에게만 발급된다. 혜택의 유무를 떠나, 때때로 배려와 양해가 필요한 순간마다 우습게도 카드 대신 아이의 얼굴을 직접 보여야 하는 상황들이 있었다.
노약자, 장애인, 인산부에게 제공하는 Priority Line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되었고 아이가 아직 미성년자라, 딸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미래를 깊이 그려보지 못했다. 거주지가 해외이니 한국의 장애인 등록은 급한 숙제가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사회적 독립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2년 전 한국을 방문해 절차를 알아보니 '6개월간의 국내 발달치료 기록'이 필수 구비 서류였다. 직장 생활을 하는 나에게 6개월의 국내 체류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작년, 주민센터 담당자에게 간절히 사정을 설명했고, 다행히 "확답은 어렵지만 필리핀 서류를 최대한 준비해 오면 심사를 시도해 보겠다"는 친절한 답변을 들었다.
지난 3월 3일~4일, 이재명 대통령의 필리핀 국빈 방문이 있었다. 나는 필리핀 한국상공회의소 부회장 자격으로 동포간담회에 참석했다. 타국에서 고국의 대통령을 만난다는 것은 마치 친정부모님이 먼 길을 달려와 주시는 것 같은 든든한 위안이 된다.
행사 전날, 앞서 진행된 싱가포르 방문 영상을 찾아보며 동포들이 자유 발언을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섬광처럼 스쳤다. 대한민국 재외동포로서, 장애아 부모로서 겪는 이 현실적인 제약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근거 없는 사명감이 나를 흔들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미 발언자가 내정되어 있을 테니 기회가 없을 거라고 했다.
우리 딸이 곧 만 13세가 되어가는데,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고, "크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은 우리 딸 같은 아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가 국가시스템 안에 장애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어야, 예상치 못한 위기상황이나 응급상황에서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하지만 절박한 마음이 있었다. 사회의 독립적인 구성원으로 서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국가가 존재해야 함을, 나는 장애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월 4일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3.4
행사 당일, 예상대로 사전에 준비된 대표 발언들이 이어졌고, 그렇게 기회는 지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만찬 시작과 함께 사회자가 예상치 못한 공지를 했다. "대통령님의 요청으로, 추가로 발언하고 싶은 분들께 자유롭게 기회를 드리겠다"는 말이었다.
순간, 정지해 있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평소 정치적 목소리를 내거나 정책 제안을 해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수많은 시선이 집중된 자리에서, 준비된 원고도 없이 대통령을 직면하여 사적인 고충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큰 압박과 같았다.
무엇보다 나를 주저하게 만든 것은, 지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대중 앞에서 "나는 지적 장애인의 엄마입니다"라고 내가 처한 상황을 교민 세상에 알리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딸아이의 상황을 아는 이들도 있었지만, 불특정 다수 앞에서 우리의 예민할 수 있는 부분을 드러낸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침묵한다면, 우리 아이가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권리도 침묵 속에 함께 묻힐 것 같았다.
쿵쾅쿵쾅 요동치는 심장을 참아내며,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다. 여러 사람 중 운이 좋게 선택되어, 질문 기회를 얻었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건, 재외동포국민으로서 6개월의 치료기록을 제출하는 것이 어려우니, 해외 거주국민에게는 신청요건을 완화해 주실 수 있느냐는 간단한 요지였다.
하지만 나의 소개부터 처한 상황을 말하는 동안 나의 목소리는 점점 떨려갔고, 뒷부분에서 나의 이야기의 핵심은 살짝 벗어나가기 시작했다. 당장의 혜택보다도 이 아이를 대한민국 정부기록에 장애인이라고 공식적으로 등록하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는데 말이다.
자리에 앉은 후에도 손끝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행사가 끝난 뒤 "정말 잘했다", "감동적이었다"는 격려를 듣고서야 간신히 마음이 가라앉게 되었다. 행사장 밖에서 일을 돕고 있던 남편도 화면으로 지켜보다가 울컥했다고 한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가끔씩 크게 찾아오는 위로의 눈물이었을까?
나 스스로에 대한 칭찬의 눈물이라고 하고 싶다. 내 평생에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나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내 딸의 미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위해 용기 낸 행동이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필리핀대사관을 통해 답변이 도착했다. 외국 의료기관의 진료 기록이라 할지라도 국내 전문의의 의학적 판단이 있다면 심사가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했을 길이었지만 나의 작은 목소리로라도 두드려, 우리 아이가 들어설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를 확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엄마, 잘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4년, 나는 다국적기업의 한국 법인에서 필리핀 법인으로 자리를 옮기며 필리핀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조금 늦은 결혼이었지만 그만큼 싱글라이프를 만끽했고, 2011년 크리스마스이브, 함박눈이 축복처럼 내리던 날 결혼식을 올렸다.
곧이어 2013년 6월 태어난 첫째 딸아이가 생후 9개월이 되었을 때 우리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다운증후군'이라는 확진 결과를 마주했다.
감사하게도 아직까지는 필리핀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며 큰 불편이나 차별을 겪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 한국에 있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장애인 등록'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필리핀의 PWD(People with Disabilities) 카드는 자국민에게만 발급된다. 혜택의 유무를 떠나, 때때로 배려와 양해가 필요한 순간마다 우습게도 카드 대신 아이의 얼굴을 직접 보여야 하는 상황들이 있었다.
노약자, 장애인, 인산부에게 제공하는 Priority Line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되었고 아이가 아직 미성년자라, 딸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미래를 깊이 그려보지 못했다. 거주지가 해외이니 한국의 장애인 등록은 급한 숙제가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사회적 독립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2년 전 한국을 방문해 절차를 알아보니 '6개월간의 국내 발달치료 기록'이 필수 구비 서류였다. 직장 생활을 하는 나에게 6개월의 국내 체류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작년, 주민센터 담당자에게 간절히 사정을 설명했고, 다행히 "확답은 어렵지만 필리핀 서류를 최대한 준비해 오면 심사를 시도해 보겠다"는 친절한 답변을 들었다.
지난 3월 3일~4일, 이재명 대통령의 필리핀 국빈 방문이 있었다. 나는 필리핀 한국상공회의소 부회장 자격으로 동포간담회에 참석했다. 타국에서 고국의 대통령을 만난다는 것은 마치 친정부모님이 먼 길을 달려와 주시는 것 같은 든든한 위안이 된다.
행사 전날, 앞서 진행된 싱가포르 방문 영상을 찾아보며 동포들이 자유 발언을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섬광처럼 스쳤다. 대한민국 재외동포로서, 장애아 부모로서 겪는 이 현실적인 제약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근거 없는 사명감이 나를 흔들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미 발언자가 내정되어 있을 테니 기회가 없을 거라고 했다.
우리 딸이 곧 만 13세가 되어가는데,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고, "크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은 우리 딸 같은 아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가 국가시스템 안에 장애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어야, 예상치 못한 위기상황이나 응급상황에서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하지만 절박한 마음이 있었다. 사회의 독립적인 구성원으로 서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국가가 존재해야 함을, 나는 장애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월 4일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3.4
행사 당일, 예상대로 사전에 준비된 대표 발언들이 이어졌고, 그렇게 기회는 지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만찬 시작과 함께 사회자가 예상치 못한 공지를 했다. "대통령님의 요청으로, 추가로 발언하고 싶은 분들께 자유롭게 기회를 드리겠다"는 말이었다.
순간, 정지해 있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평소 정치적 목소리를 내거나 정책 제안을 해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수많은 시선이 집중된 자리에서, 준비된 원고도 없이 대통령을 직면하여 사적인 고충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큰 압박과 같았다.
무엇보다 나를 주저하게 만든 것은, 지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대중 앞에서 "나는 지적 장애인의 엄마입니다"라고 내가 처한 상황을 교민 세상에 알리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딸아이의 상황을 아는 이들도 있었지만, 불특정 다수 앞에서 우리의 예민할 수 있는 부분을 드러낸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침묵한다면, 우리 아이가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권리도 침묵 속에 함께 묻힐 것 같았다.
쿵쾅쿵쾅 요동치는 심장을 참아내며,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다. 여러 사람 중 운이 좋게 선택되어, 질문 기회를 얻었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건, 재외동포국민으로서 6개월의 치료기록을 제출하는 것이 어려우니, 해외 거주국민에게는 신청요건을 완화해 주실 수 있느냐는 간단한 요지였다.
하지만 나의 소개부터 처한 상황을 말하는 동안 나의 목소리는 점점 떨려갔고, 뒷부분에서 나의 이야기의 핵심은 살짝 벗어나가기 시작했다. 당장의 혜택보다도 이 아이를 대한민국 정부기록에 장애인이라고 공식적으로 등록하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는데 말이다.
자리에 앉은 후에도 손끝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행사가 끝난 뒤 "정말 잘했다", "감동적이었다"는 격려를 듣고서야 간신히 마음이 가라앉게 되었다. 행사장 밖에서 일을 돕고 있던 남편도 화면으로 지켜보다가 울컥했다고 한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가끔씩 크게 찾아오는 위로의 눈물이었을까?
나 스스로에 대한 칭찬의 눈물이라고 하고 싶다. 내 평생에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나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내 딸의 미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위해 용기 낸 행동이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필리핀대사관을 통해 답변이 도착했다. 외국 의료기관의 진료 기록이라 할지라도 국내 전문의의 의학적 판단이 있다면 심사가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했을 길이었지만 나의 작은 목소리로라도 두드려, 우리 아이가 들어설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를 확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엄마,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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