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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로 길고 긴 여름나기

2026. 06. 20. 오전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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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군의 '풍천장어' 구이. [사진 박상현]

장어는 예로부터 여름철 대표 보양 음식이다. 여름 여행에서 장어를 믿고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세 곳을 소개한다.

=인간이 물고기에 산란에서부터 성장까지 일괄 관리하는 방식을 양식(養殖)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국내 생선회 소비량 1위인 광어(넙치)가 있다. 그런데 뱀장어는 양식 대신 ‘장어를 키운다’라는 의미로 ‘양만(養鰻)’이라고 한다. 뱀장어 양식장이 아니라 양만장이 바른 표현이다.

강과 하천에서 5~12년을 산 장어는 알을 낳기 위해 적도 부근 태평양의 심해로 간다. 장어를 유난히 좋아하는 일본은 이 비밀을 풀기 위해 1930년대부터 장어의 산란 경로를 추적했고 2009년이 돼서야 비로소 뱀장어의 산란장이 필리핀 마리나해구 주변임을 확인했다. 2010년 일본에 이어 2016년에는 우리도 장어 완전 양식에 성공했지만 상업적인 생산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태평양에서 부화해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실뱀장어를 잡아 이를 적정한 크기로 성장할 때까지 키워서 출하한다.

우리나라에서 뱀장어로 가장 유명한 지역은 전라북도 고창군이다. ‘풍천장어’라는 브랜드까지 갖고 있다. 그래서 고창군 심원면 일대에는 뱀장어 양만장이 70여 곳이나 있다. 무게 0.2g 정도에 불과한 실뱀장어를 출하 규격인 250g 정도로 키우는 데는 8개월 이상 걸린다. 이때 장어에게는 전용 사료에 영양제·강장제·효소 등을 첨가한 먹이를 하루 두 번 먹인다. 실뱀장어 가격과 장어 먹이의 수준, 그리고 시간을 생각하면 비싼 장어 가격이 납득될 정도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라북도 고창군과 전라남도 해남군의 장어 양만장에서 키운 뱀장어 가운데 가장 크고 건강한 녀석들은 강화도 양도면 일대 갯벌장어 양식장으로 간다. 이곳은 자연의 갯벌 상태 그대로다. 인간의 일이란 바닷물을 끌어오고 수차를 돌려 산소를 공급하는 게 전부. 수동적으로 먹이를 받아 먹는 데 익숙해진 뱀장어는 처음에는 먹이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면서 살이 빠진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뱀장어는 DNA에 각인된 야생성을 회복한다. 그러면서 바닷물 속에 있는 새우와 치어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이렇게 75일쯤 지나면 갯벌장어는 지방은 쏙 빠지고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로 재탄생한다. 정해진 사료만 먹고 성장한 장어는 느끼한 맛이 남아있는 데 반해, 갯벌장어는 몸집은 크지만 맛이 담백하고 무엇보다 단단하고 탄력 있는 육질이 매력적이다. 이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양념을 바르기보다 소금간만 해서 먹는 게 제격이다.

=지금은 국가 수출액에서 일본을 뛰어넘을 정도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한때는 우리 바다에서 나는 좋은 건 죄다 일본으로 수출했던 적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어종이 갯장어였다. 수온이 높을수록 활동이 활발한 갯장어는 초여름에서 초가을까지 주로 잡힌다. 여름이 우리보다 덥고 습한 일본 오사카와 교토 등 간사이 지방에서는 여름 최고의 보양음식으로 ‘하모(갯장어)’를 꼽는다. 여름철에는 수요가 워낙 많아 한국산 갯장어를 쓸어가다시피 했다. 특히 여수·통영·고성 등 한반도 남해안 갯장어를 최고로 쳤다. 하지만 2000년대 접어들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한국인들이 갯장어를 여름 별미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일본 수출보다 국내 소비량이 증가했다.

3000개가 넘는 갯장어의 잔가시는 칼로 두드려 으깨버린다. [사진 박상현]

갯장어는 매우 까다로운 생선이다.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어 잘 물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몸속에 잔가시만 3000개가 넘고 심지어 억세다. 이걸 일일이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본 요리사들이 선택한 방식이 1~2㎜ 간격으로 칼집을 넣어 뼈를 으깨버리는, 일명 ‘호네키리’로 우리말로는 ‘송치기’라고 한다. 갯장어 한 마리당 최소 250번 이상의 칼질이 들어간다.

갯장어는 생김새와 달리 맛이 굉장히 담백한 생선이기 때문에 회로 먹거나 샤부샤부로 즐겨야 제격이다. 특히 이맘때 수확한 햇양파와 갯장어 회는 찰떡궁합이다. 갯장어의 대표 도시답게 여수 돌산대교 아래에는 갯장어 전문 횟집들이 모여 ‘갯장어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부산 기장군 칠암마을의 반건조 붕장어 구이는 고추장 등의 양념을 발라 굽는다. [사진 박상현]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부산 기장군 일대 앞바다는 물살이 거칠고 먹이가 풍부하다. 그래서 이 지역에선 예로부터 붕장어가 흔했다. 특히 기장군 일광면 칠암마을 일대는 붕장어 전문점이 즐비하다. 주말이면 붕장어 굽는 연기가 온 마을이 덮을 정도로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붕장어는 회·구이·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데 기장군의 전통적인 방식은 따로 있다. 예로부터 기장에서는 1㎏이 넘는 대물 장어를 선호했다. 다만 이 장어는 그냥 먹기엔 너무 기름졌다. 그래서 여름의 뜨거운 햇살에 꾸덕할 정도로 말린다. 이렇게 반 건조한 붕장어에 고추장을 비롯한 양념을 발라 굽는다. 건조된 생선의 깊은 맛과 산산이 부서지듯 흩어지는 속살이 매콤한 양념과 어우러져 술과 밥을 절로 부른다. 여름철 부산 여행에서 놓치면 아까운 맛이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음식의 탄생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것에 관심 많은 맛칼럼니스트다. 현재 사단법인 부산로컬푸드랩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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