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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충돌도 타협도 두렵다…‘이중 불안’ 시달리는 대만
2026. 06. 20. 오전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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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의 차이나 워치] 미·중 패권싸움 한복판의 대만
지난해 1월 설날 연휴를 앞두고 대만 가오슝 앞바다에서 열린 대만 연례 훈련에서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춘 해군 요원들이 광화 6급 미사일 보트에 탑승해 항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26년의 대만은 기묘한 위기 속에 서 있다. 위협의 그림자는 그 어느 때보다 짙어졌는데, 정작 전면전이라는 전쟁의 문턱은 역설적으로 멀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올해 3월 미국 18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실(ODNI)은 ‘2026 연례 위협 평가’에서 “중국 지도부는 2027년 대만 침공 계획이 없으며 통일을 위한 고정된 시간표도 없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지배해 온 ‘데이비슨 윈도’, 즉 2027년 침공설이 공식 정보판단 차원에서 사실상 해체된 것이다. 무력 사용은 중국인민해방군(PLA) 준비태세, 대만 내부 정치, 미국의 개입 의지라는 세 변수의 함수로 제시됐고, 침공은 예정된 사건이 아니라 조건부 옵션으로 다시 규정됐다.
표면적으로는 긴장을 늦출 만한 소식처럼 들린다. 그러나 베이징의 진단은 정반대였다. 중국 칭화대 국제안보전략센터(CISS)는 올해 중국이 직면할 최대 외부 안보 리스크 1위로 대만해협을 꼽았다. 미국 정보당국은 “전쟁은 없다”고 하고 중국 최고 권위의 싱크탱크는 “올해가 가장 위험하다”고 말한다. 이 모순이 가리키는 지점은 분명하다. 대만의 진짜 위기는 당장 터질 전면전이 아니라, 전쟁의 문턱 바로 아래에서 매일같이 진행되는 질식, 강압, 그리고 우발적 오판의 동시다발적 압박이다. 베이징의 시계는 2027년의 단기적 군사 목표를 넘어, 건국 100주년인 2049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맞춰져 있다. 그사이의 긴 전략적 과도기를 대규모 무력 충돌 없이 통일의 기정사실화를 이루는 여건 조성에 쓰겠다는 것이 중국 전략의 본질이다.
대만인 57% “전쟁 나도 미군 파견 안할 것”
지난해 12월 말 베이징의 한 전광판에 보도된 중국의 '정의 임무 2025' 군사 훈련 모습. [중앙포토]
대만을 향한 위협의 형태는 이미 ‘상륙 D-Day’에서 ‘다영역 점진적 질식’으로 이행한 지 오래다. 2020년 380여 회였던 중국 군용기의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 진입은 2025년 3764회로 폭증하며 상시화되었다. 대만해협 중간선은 무력화되었고 야간 비행과 연합 예비 전투 순찰이 일상이 되었다. 2022년 펠로시 미 하원의장 방만 당시 인민해방군이 대만 상공을 가로질러 일본 배타적경제수역까지 미사일을 떨어뜨린 사건은 전면 상륙 없이도 대만을 물리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다는 봉쇄 시나리오를 전 세계에 시연한 충격이었다. 지난해 12월 말 ‘정의의 임무 2025’ 훈련에서 인민해방군은 27발의 미사일을 발사하고 그중 10발을 대만 인접수역(24해리)에 떨어뜨려 1996년 대만해협 위기 이후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화력을 들이밀었다. 미국 CSIS를 비롯한 워게임 연구들 역시 수륙양용 침공의 막대한 비용을 지적하며 해상 봉쇄나 해경을 동원한 격리가 훨씬 개연성 높은 압박 형태임을 경고한다.
시진핑의 군 내부 숙청은 단기 상륙 능력을 떨어뜨려 침공 가능성을 낮추는 평가의 배경이 됐지만 충성 경쟁과 지휘 체계 불안정이 오히려 우발적 충돌의 위험을 키우는 역설을 낳고 있다. 큰 전쟁이 덜 가능해진 자리를 회색지대 공세, 해상 봉쇄, 사이버와 인지전이 빼곡히 메우고 있는 것이다.
대만의 두 번째 고민은 미국 그 자체에서 온다. 5월 베이징에서 열린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은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라는 신조어를 전면에 세웠다. 트럼프는 “대만 정책에 바뀐 것은 없다”면서도 약 140억 달러 규모의 대만 무기 패키지를 사실상 보류 상태로 두면서 “매우 좋은 협상 칩”이라고 표현했다. 레이건 시절 ‘6대 보장’의 한 축, 즉 무기 판매를 중국과 사전 협의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흔들리는 발언이었다. 콜비 국방차관 라인이 견지하는 ‘제1도련선 거부 억지’의 구조는 유지되지만, 그 위에서 트럼프식 거래의 언어가 동시에 작동한다. 워싱턴이 보는 대만은 “매우 중요하지만 실존적 이익은 아닌” 자산, 미국에게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더 많은 자기방위를 증명해야 하는 조건부 대상으로 재배치됐다.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 정치권이 ‘대만 카드’를 흔들 때마다, 대만은 자신의 운명이 거래의 종속변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매일 체감하게 될 것이다.
=필립 데이비슨 전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이 2021년 미 상원 청문회에서 “중국이 2027년까지 대만 침공 준비를 마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제시한 군사적 시간표. 2027년은 중국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일본 열도에서 오키나와, 대만을 거쳐 필리핀까지 이어지는 섬들의 연결선이다. 중국이 동·남중국해 장악과 태평양 진출을 위한 해양 봉쇄선이자, 미국이 대중국 방어 및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선이다.
여기서 대만의 가장 깊은 고민이 드러난다. 미·중이 충돌해도 위험하지만 미·중이 타협해도 대만은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 ‘전쟁의 전장’이 되지 않는 것과 ‘타협의 거래물’이 되지 않는 것 사이에서 동시에 긴장해야 하는 이중의 불안이다. 지난해 랜드 연구소의 미·중 안정화 보고서가 “베이징에 점진적 통일의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는 논지로 거센 논란을 부른 것도 이 지점에서다. 두 강대국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동안 대만의 운명이 대만 없는 자리에서 결정될 수 있다는 공포, 일본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해 11월 중국의 대만 침공을 “존립 위기 사태”로 규정하자 베이징이 항공편·수산물·센카쿠 일대에서 다영역 강압을 쏟아낸 풍경도 이 거대한 체스판의 일부다.
대만 사회는 이 변화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다. 미국이 “약속을 지키는 국가”라고 보는 비율은 2021년 45%에서 올해 34.3%로 내려앉았고, “전쟁이 나도 미국이 군대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57%에 달했다. 그러나 가중되는 외부 압박은 사회를 위축시키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더 또렷이 자각하게 만든다. 같은 시기 “미국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저항하겠다”는 응답은 58.7%, 미국산 무기 구매 지지는 70%에 달했다. 의무 복무는 4개월에서 1년으로 환원됐고, 라이칭더 총통은 신년사 제목을 ‘회복탄력성의 섬’으로 정했다. 국방예산을 2030년까지 GDP의 5%로 끌어올리는 목표와 함께, 2026~2033년 8년에 걸쳐 약 400억 달러 규모의 특별 국방예산 로드맵을 내놓았다. 4월부터는 전국 11개 도시와 현에서 실시간 ‘도시 회복탄력성 훈련’이 8월까지 진행되고, 이미 2월까지 900만 가구 이상에 시민 방위 핸드북이 배포됐다.
미국을 덜 신뢰하면서도 중국을 선택하지 않고 자위 의지가 함께 올라가는 이 역설은, 대만 사회가 “나는 대만인이다”라는 자기 서사를 깊이 내면화했음을 보여 준다. 대만은 더 이상 미·중 패권 경쟁의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미국의 신뢰성, 중국의 강압, 자국 정치의 양극화, 사회적 회복탄력성 사이에서 생존 서사를 재구성하는 주체로 이동하고 있다.
물론 그 행위능력이 무한정 단단한 것은 아니다. 안으로는 AI 호황이 만든 ‘K자형 경제’가 “우리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감각을 갉아먹는다. 지난해 8.63%라는 15년 만의 최고 성장률을 기록한 가운데 성장의 거의 전부가 AI와 반도체 공급망에서 비롯됐다. 1인당 GDP는 한국과 일본을 추월했지만 근로자 70%가 평균 임금 이하에 머문다. 반도체 호황이 만든 ‘실리콘 방패’는 세계가 대만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물리적 방패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대만을 가장 쟁탈하기 쉬운 전략 자산으로 만드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밖으로는 국가안전국(NSB)이 지난해 적발한 가짜 계정이 4만5000여 개로 전년 대비 약 60% 급증한 가운데, 11월 지방선거를 노린 인지전이 사회 내부 분열을 겨눈다.
수호·쟁탈의 대상…‘실리콘 방패’ 이중성
내부의 정책 논쟁도 만만치 않다. 국방비 증액, 대미 무기 구매와 미국에 대한 투자 확대, 중국과의 최소한의 대화 유지, 현상유지 노선, 독립 담론의 절제 사이에서 어떤 조합이 자율 공간을 가장 넓힐 수 있는지를 두고 여야는 매일 충돌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논쟁을 관통하는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라는 자기 서사의 단단함은 흔들리지 않고 있고, 오히려 외부 압력이 강해질수록 더 또렷해지고 있다.
그래서 2026년 대만이 진정으로 지키려는 것은 영토와 반도체 공장만이 아니다. 전쟁의 시계는 늦춰졌을 수 있으나 강압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그 현실 앞에서 대만은 미국과 중국이 그어 준 체스판의 말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행위능력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있다. 미국을 향한 신뢰는 흔들리고 안으로는 균열이 번지지만 “나는 대만인이다”라는 자기 서사만큼은 외부의 압력이 거셀수록 오히려 또렷해졌다.
결국 대만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무기의 양이나 무역수지의 크기가 아니라,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얼마나 단단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강대국의 갈등과 타협이 동시에 밀려오는 한가운데서,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가. 총성 없는 대리전의 최전선에 선 대만이 지금 온몸으로 견뎌 내고 있는 질문이다.
장영희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대만연구센터 센터장.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로 충남대 평화안보연구소 연구위원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국립대만대 국가발전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지난해 1월 설날 연휴를 앞두고 대만 가오슝 앞바다에서 열린 대만 연례 훈련에서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춘 해군 요원들이 광화 6급 미사일 보트에 탑승해 항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26년의 대만은 기묘한 위기 속에 서 있다. 위협의 그림자는 그 어느 때보다 짙어졌는데, 정작 전면전이라는 전쟁의 문턱은 역설적으로 멀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올해 3월 미국 18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실(ODNI)은 ‘2026 연례 위협 평가’에서 “중국 지도부는 2027년 대만 침공 계획이 없으며 통일을 위한 고정된 시간표도 없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지배해 온 ‘데이비슨 윈도’, 즉 2027년 침공설이 공식 정보판단 차원에서 사실상 해체된 것이다. 무력 사용은 중국인민해방군(PLA) 준비태세, 대만 내부 정치, 미국의 개입 의지라는 세 변수의 함수로 제시됐고, 침공은 예정된 사건이 아니라 조건부 옵션으로 다시 규정됐다.
표면적으로는 긴장을 늦출 만한 소식처럼 들린다. 그러나 베이징의 진단은 정반대였다. 중국 칭화대 국제안보전략센터(CISS)는 올해 중국이 직면할 최대 외부 안보 리스크 1위로 대만해협을 꼽았다. 미국 정보당국은 “전쟁은 없다”고 하고 중국 최고 권위의 싱크탱크는 “올해가 가장 위험하다”고 말한다. 이 모순이 가리키는 지점은 분명하다. 대만의 진짜 위기는 당장 터질 전면전이 아니라, 전쟁의 문턱 바로 아래에서 매일같이 진행되는 질식, 강압, 그리고 우발적 오판의 동시다발적 압박이다. 베이징의 시계는 2027년의 단기적 군사 목표를 넘어, 건국 100주년인 2049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맞춰져 있다. 그사이의 긴 전략적 과도기를 대규모 무력 충돌 없이 통일의 기정사실화를 이루는 여건 조성에 쓰겠다는 것이 중국 전략의 본질이다.
대만인 57% “전쟁 나도 미군 파견 안할 것”
지난해 12월 말 베이징의 한 전광판에 보도된 중국의 '정의 임무 2025' 군사 훈련 모습. [중앙포토]
대만을 향한 위협의 형태는 이미 ‘상륙 D-Day’에서 ‘다영역 점진적 질식’으로 이행한 지 오래다. 2020년 380여 회였던 중국 군용기의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 진입은 2025년 3764회로 폭증하며 상시화되었다. 대만해협 중간선은 무력화되었고 야간 비행과 연합 예비 전투 순찰이 일상이 되었다. 2022년 펠로시 미 하원의장 방만 당시 인민해방군이 대만 상공을 가로질러 일본 배타적경제수역까지 미사일을 떨어뜨린 사건은 전면 상륙 없이도 대만을 물리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다는 봉쇄 시나리오를 전 세계에 시연한 충격이었다. 지난해 12월 말 ‘정의의 임무 2025’ 훈련에서 인민해방군은 27발의 미사일을 발사하고 그중 10발을 대만 인접수역(24해리)에 떨어뜨려 1996년 대만해협 위기 이후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화력을 들이밀었다. 미국 CSIS를 비롯한 워게임 연구들 역시 수륙양용 침공의 막대한 비용을 지적하며 해상 봉쇄나 해경을 동원한 격리가 훨씬 개연성 높은 압박 형태임을 경고한다.
시진핑의 군 내부 숙청은 단기 상륙 능력을 떨어뜨려 침공 가능성을 낮추는 평가의 배경이 됐지만 충성 경쟁과 지휘 체계 불안정이 오히려 우발적 충돌의 위험을 키우는 역설을 낳고 있다. 큰 전쟁이 덜 가능해진 자리를 회색지대 공세, 해상 봉쇄, 사이버와 인지전이 빼곡히 메우고 있는 것이다.
대만의 두 번째 고민은 미국 그 자체에서 온다. 5월 베이징에서 열린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은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라는 신조어를 전면에 세웠다. 트럼프는 “대만 정책에 바뀐 것은 없다”면서도 약 140억 달러 규모의 대만 무기 패키지를 사실상 보류 상태로 두면서 “매우 좋은 협상 칩”이라고 표현했다. 레이건 시절 ‘6대 보장’의 한 축, 즉 무기 판매를 중국과 사전 협의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흔들리는 발언이었다. 콜비 국방차관 라인이 견지하는 ‘제1도련선 거부 억지’의 구조는 유지되지만, 그 위에서 트럼프식 거래의 언어가 동시에 작동한다. 워싱턴이 보는 대만은 “매우 중요하지만 실존적 이익은 아닌” 자산, 미국에게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더 많은 자기방위를 증명해야 하는 조건부 대상으로 재배치됐다.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 정치권이 ‘대만 카드’를 흔들 때마다, 대만은 자신의 운명이 거래의 종속변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매일 체감하게 될 것이다.
=필립 데이비슨 전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이 2021년 미 상원 청문회에서 “중국이 2027년까지 대만 침공 준비를 마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제시한 군사적 시간표. 2027년은 중국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일본 열도에서 오키나와, 대만을 거쳐 필리핀까지 이어지는 섬들의 연결선이다. 중국이 동·남중국해 장악과 태평양 진출을 위한 해양 봉쇄선이자, 미국이 대중국 방어 및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선이다.
여기서 대만의 가장 깊은 고민이 드러난다. 미·중이 충돌해도 위험하지만 미·중이 타협해도 대만은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 ‘전쟁의 전장’이 되지 않는 것과 ‘타협의 거래물’이 되지 않는 것 사이에서 동시에 긴장해야 하는 이중의 불안이다. 지난해 랜드 연구소의 미·중 안정화 보고서가 “베이징에 점진적 통일의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는 논지로 거센 논란을 부른 것도 이 지점에서다. 두 강대국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동안 대만의 운명이 대만 없는 자리에서 결정될 수 있다는 공포, 일본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해 11월 중국의 대만 침공을 “존립 위기 사태”로 규정하자 베이징이 항공편·수산물·센카쿠 일대에서 다영역 강압을 쏟아낸 풍경도 이 거대한 체스판의 일부다.
대만 사회는 이 변화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다. 미국이 “약속을 지키는 국가”라고 보는 비율은 2021년 45%에서 올해 34.3%로 내려앉았고, “전쟁이 나도 미국이 군대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57%에 달했다. 그러나 가중되는 외부 압박은 사회를 위축시키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더 또렷이 자각하게 만든다. 같은 시기 “미국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저항하겠다”는 응답은 58.7%, 미국산 무기 구매 지지는 70%에 달했다. 의무 복무는 4개월에서 1년으로 환원됐고, 라이칭더 총통은 신년사 제목을 ‘회복탄력성의 섬’으로 정했다. 국방예산을 2030년까지 GDP의 5%로 끌어올리는 목표와 함께, 2026~2033년 8년에 걸쳐 약 400억 달러 규모의 특별 국방예산 로드맵을 내놓았다. 4월부터는 전국 11개 도시와 현에서 실시간 ‘도시 회복탄력성 훈련’이 8월까지 진행되고, 이미 2월까지 900만 가구 이상에 시민 방위 핸드북이 배포됐다.
미국을 덜 신뢰하면서도 중국을 선택하지 않고 자위 의지가 함께 올라가는 이 역설은, 대만 사회가 “나는 대만인이다”라는 자기 서사를 깊이 내면화했음을 보여 준다. 대만은 더 이상 미·중 패권 경쟁의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미국의 신뢰성, 중국의 강압, 자국 정치의 양극화, 사회적 회복탄력성 사이에서 생존 서사를 재구성하는 주체로 이동하고 있다.
물론 그 행위능력이 무한정 단단한 것은 아니다. 안으로는 AI 호황이 만든 ‘K자형 경제’가 “우리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감각을 갉아먹는다. 지난해 8.63%라는 15년 만의 최고 성장률을 기록한 가운데 성장의 거의 전부가 AI와 반도체 공급망에서 비롯됐다. 1인당 GDP는 한국과 일본을 추월했지만 근로자 70%가 평균 임금 이하에 머문다. 반도체 호황이 만든 ‘실리콘 방패’는 세계가 대만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물리적 방패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대만을 가장 쟁탈하기 쉬운 전략 자산으로 만드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밖으로는 국가안전국(NSB)이 지난해 적발한 가짜 계정이 4만5000여 개로 전년 대비 약 60% 급증한 가운데, 11월 지방선거를 노린 인지전이 사회 내부 분열을 겨눈다.
수호·쟁탈의 대상…‘실리콘 방패’ 이중성
내부의 정책 논쟁도 만만치 않다. 국방비 증액, 대미 무기 구매와 미국에 대한 투자 확대, 중국과의 최소한의 대화 유지, 현상유지 노선, 독립 담론의 절제 사이에서 어떤 조합이 자율 공간을 가장 넓힐 수 있는지를 두고 여야는 매일 충돌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논쟁을 관통하는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라는 자기 서사의 단단함은 흔들리지 않고 있고, 오히려 외부 압력이 강해질수록 더 또렷해지고 있다.
그래서 2026년 대만이 진정으로 지키려는 것은 영토와 반도체 공장만이 아니다. 전쟁의 시계는 늦춰졌을 수 있으나 강압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그 현실 앞에서 대만은 미국과 중국이 그어 준 체스판의 말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행위능력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있다. 미국을 향한 신뢰는 흔들리고 안으로는 균열이 번지지만 “나는 대만인이다”라는 자기 서사만큼은 외부의 압력이 거셀수록 오히려 또렷해졌다.
결국 대만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무기의 양이나 무역수지의 크기가 아니라,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얼마나 단단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강대국의 갈등과 타협이 동시에 밀려오는 한가운데서,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가. 총성 없는 대리전의 최전선에 선 대만이 지금 온몸으로 견뎌 내고 있는 질문이다.
장영희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대만연구센터 센터장.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로 충남대 평화안보연구소 연구위원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국립대만대 국가발전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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