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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항해가 닿은 곳, 자연의 비극도 시작됐다
2026. 08. 15. 오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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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이스터 섬 해변의 전형적인 모습. 숲은 사라지고 대신 초지와 모아이 석상만 남았다. [연합뉴스]
대학원 다닐 때 ‘라파누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이 영화의 줄거리가 펼쳐지는 공간은 독특한 모양의 석상 ‘모아이’로 익히 알려진 ‘이스터 섬’이다. 영화는 섬의 지배층이 자신들의 권위를 내보이기 위해 점점 더 거대한 석상을 만들면서 그 여파로 망가지는 숲과 인간 사회를 흥미롭게 그려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주민들이 석상을 운반하려고 마지막 남은 야자나무를 베려 하자 주인공은 외친다. “이게 마지막 나무야! 이제 더는 없어!” 그러자 그들은 반박한다. “누군가는 저 나무를 벨 텐데, 우리가 벤다고 달라질 게 뭐 있어?” 전형적인 공유지의 비극이다.
사모아·통가서 1700년 머물다 다시 바다로
한때 이스터 섬은 인간이 숲을 모두 베어 버려 스스로 문명을 파괴한 ‘생태학적 자살’의 대표 사례로 널리 알려졌다. 모아이를 운반하기 위해 나무를 마구 베었고, 결국 숲이 사라져 배를 만들 수도,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도 없게 되면서 사회가 무너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이러한 설명이 지나친 단순화란 걸 보여준다. 숲의 소멸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다른 문제들도 많았다. 사람과 함께 섬에 들어온 쥐가 나무 씨앗을 먹어 치워 숲의 재생을 방해했고 장기간의 가뭄과 기후 변동은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렸으며 인구 증가와 자원 감소는 사회 갈등을 증폭시켰다. 이스터 섬 문명의 쇠퇴는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 환경 문제와 사회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난 결과였다.
이스터 섬은 세계에서 가장 외딴 유인도 가운데 하나로 현재는 칠레의 통치를 받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남아메리카와 가깝지만 생태계가 붕괴한 15~17세기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은 아메리카 원주민과는 전혀 다른 집단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였을까. 어떻게 이처럼 고립된 섬에 정착하게 되었을까. 또 어떤 경로를 거쳐 이 먼 섬에 도달한 것일까. 그 해답은 적도 서태평양, 이스터 섬에서 서쪽으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사모아·통가군도다. 여기에서 이들 ‘폴리네시아인’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곳은 ‘폴리네시아인의 요람’이라고도 불린다. 시계를 좀 더 뒤로 돌려 보자. 원래 이들의 조상은 또 어디에 있다가 사모아·통가 군도로 흘러들어온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동아시아의 대만에서 시작된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긴 여정을 살펴봐야 한다.
사실 오스트로네시아인의 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장강(양쯔강) 하류에 이른다. 이곳의 벼농경민들이 해안을 따라 남하한 뒤 타이완 해협을 건너 대만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이후 약 6000~5000년 전, 대만의 오스트로네시아 농경민들은 드디어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거쳐 남태평양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뉴기니 북동쪽 비스마르크 제도에서 독특한 라피타 문화를 꽃피웠다. 정교한 기하학 무늬를 찍은 라피타 토기는 오늘날 이들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이다. 이들은 선체 한쪽이나 양쪽에 긴 지지대를 단 아웃트리거 카누를 이용해 먼바다를 안전하게 항해했다. 나침반도 없던 시대에 별·해류·바람을 읽으며 태평양을 건넌 이들의 항해술은 인류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업적이다.
지속적으로 남진하던 라피타 문화 사람들은 기원전 1000~800년경 마침내 사모아와 통가에 도착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곳에서 동쪽으로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약 1700년 동안 사모아와 통가에 머물며 인구를 늘리고 사회를 발전시켰다. 고고학자들은 이를 ‘긴 정체(Long Pause)’라고 부른다. 그리고 기원후 800년경, 즉 중세온난기가 시작될 때 이들은 다시 동쪽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는 태평양을 누빈 폴리네시아 항해자들의 용기와 도전 정신을 아름답게 그려 낸 작품이다. 주제곡도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에서 모아나의 할머니는 손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말 우리 조상들이 산호초 안에서만 살았다고 생각하니?” 할머니는 이 한마디로 ‘우리는 원래 바다를 건너던 민족이었다’는 사실을 모아나에게 일깨워 준다. 모아나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부족 사람들과 함께 아웃트리거 카누를 타고 망망대해로 떠난다. 자신들이 원래 대양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무리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허구가 섞인 창작물이긴 하지만 이 영화 속 이야기는 실제 폴리네시아인의 역사와 닮은 데가 많다. 앞에서 언급한 ‘긴 정체’를 생각해 보라.
이들은 사모아와 통가에 도착한 후 왜 항해자라는 정체성을 버렸던 것일까. 그리고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왜 갑자기 다시 항해를 시작한 것일까. 과거에는 더 먼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기술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는 설명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모아와 통가가 농경과 정착에 유리한 환경이었던 데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후 오랜 정착 생활에 따른 인구 증가 그리고 전반적인 기후 변화로 식량 압박이 커지자 다시 망망대해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 서기 800년경부터 적도태평양의 평균 기후가 라니냐형에서 엘니뇨형으로 변하면서 사모아와 통가를 비롯한 서쪽 섬들에서는 장기간 건조한 기후가 이어졌고 극단적인 가뭄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이런 상황을 은유하듯 ‘모아나’ 영화 초반부에도 섬에서 물고기가 사라지고 코코넛이 썩으며 농작물이 시드는 등 이상 징후들이 나타난다. 반대로 쿡 제도와 타히티 등 동쪽의 섬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비가 내려 정착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식량과 물 부족에 시달리던 서쪽 섬의 사람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새로운 땅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된 이동 방향은 물 걱정을 덜 수 있는 동쪽이었다. 마침 엘니뇨 현상의 강화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도 약해졌기에 이전에 비해 항해 위험도 줄었다. 앞날은 여전히 불확실했지만 그대로 머무는 것보다 떠나는 편이 더 나았다.
물론 기후 변화만으로 이들의 이동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항해 기술의 발전과 인구 증가도 함께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만 중세온난기의 기후 변화가 서쪽 섬의 생산성을 떨어뜨려 주민들을 바깥으로 떠밀었고 동시에 동방의 섬을 풍요롭게 만들면서 서쪽 사람들을 끌어당겼다는 가설은 고고학 유적 자료와 기후변화 자료를 비교해서 얻은 결론으로 설득력이 있다.
높이 3m, 몸무게 500㎏ ‘코끼리새’도 멸종
그리하여 다시 항해를 시작한 이들은 동진을 거듭하다 앞서 설명한 태평양 동쪽 끝의 이스터 섬까지 진출했다. 그뿐 아니다. 저 멀리 위치한 북쪽의 하와이와 남쪽의 뉴질랜드로도 들어갔다. 이 정도면 대만에서 출발하여 사모아 및 통가까지 진출한 오스트로네시아 조상들의 위업을 뛰어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오스트로네시아인의 도전은 동쪽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도 활동 범위를 넓혔다. 일부 집단은 계절풍을 이용해 인도양을 횡단했고 마침내 서기 6~7세기경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마다가스카르에 정착했다. 믿기 힘들지만 마다가스카르의 공용어인 말라가시어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남동부의 언어는 언어학적으로 매우 가깝다.
뉴질랜드에서 15세기에 멸종한 모아새를 20세기 초에 모형으로 복원했다. [사진 위키미디어]
이들은 또한 농경과 목축을 하며 마다가스카르의 생태계를 크게 변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높이 3m, 몸무게 500㎏이 넘는 ‘코끼리새’가 사냥, 알 채집, 서식지 파괴 등의 영향을 받아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태평양 동쪽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폴리네시아인들이 13세기 무렵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할 때 그곳에는 천적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진화한 날지 못하는 새 ‘모아’가 살고 있었다. 높이 3m를 넘는 모아는 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불과 150~200년 만에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모아를 주된 먹이로 삼던 거대한 맹금류 ‘하스트수리’ 역시 먹이를 잃으면서 함께 멸종했다. 이러한 대형 동물의 멸종은 한 종의 소멸에서 그치지 않는다. 먹이 사슬과 식생 구조까지 연쇄적으로 바꿈으로써 생태계의 회복탄력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오스트로네시아인과 그들의 후손인 폴리네시아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항해 집단이었다. 위험천만한 바다를 건너 새로운 땅을 개척한 그들의 놀라운 이주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의 잠재력과 도전 정신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역사는 인간이 신중함을 잃고 욕심을 부릴 때 생태계가 얼마나 빠르게 무너질 수 있는지도 잘 보여 준다. 건강한 생태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인하다. 그러나 한번 균형이 무너진 생태계는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며 아예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스트로네시아인의 위대한 항해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 준 역사다. 또한 자연과의 공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역사이기도 하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UC 버클리에서 생물지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 저서로 『기후로 보는 한국사』 『한국인의 기원』 『기후의 힘』 『인간의 시대에 오신 것을 애도합니다』 등이 있다.
대학원 다닐 때 ‘라파누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이 영화의 줄거리가 펼쳐지는 공간은 독특한 모양의 석상 ‘모아이’로 익히 알려진 ‘이스터 섬’이다. 영화는 섬의 지배층이 자신들의 권위를 내보이기 위해 점점 더 거대한 석상을 만들면서 그 여파로 망가지는 숲과 인간 사회를 흥미롭게 그려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주민들이 석상을 운반하려고 마지막 남은 야자나무를 베려 하자 주인공은 외친다. “이게 마지막 나무야! 이제 더는 없어!” 그러자 그들은 반박한다. “누군가는 저 나무를 벨 텐데, 우리가 벤다고 달라질 게 뭐 있어?” 전형적인 공유지의 비극이다.
사모아·통가서 1700년 머물다 다시 바다로
한때 이스터 섬은 인간이 숲을 모두 베어 버려 스스로 문명을 파괴한 ‘생태학적 자살’의 대표 사례로 널리 알려졌다. 모아이를 운반하기 위해 나무를 마구 베었고, 결국 숲이 사라져 배를 만들 수도,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도 없게 되면서 사회가 무너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이러한 설명이 지나친 단순화란 걸 보여준다. 숲의 소멸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다른 문제들도 많았다. 사람과 함께 섬에 들어온 쥐가 나무 씨앗을 먹어 치워 숲의 재생을 방해했고 장기간의 가뭄과 기후 변동은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렸으며 인구 증가와 자원 감소는 사회 갈등을 증폭시켰다. 이스터 섬 문명의 쇠퇴는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 환경 문제와 사회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난 결과였다.
이스터 섬은 세계에서 가장 외딴 유인도 가운데 하나로 현재는 칠레의 통치를 받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남아메리카와 가깝지만 생태계가 붕괴한 15~17세기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은 아메리카 원주민과는 전혀 다른 집단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였을까. 어떻게 이처럼 고립된 섬에 정착하게 되었을까. 또 어떤 경로를 거쳐 이 먼 섬에 도달한 것일까. 그 해답은 적도 서태평양, 이스터 섬에서 서쪽으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사모아·통가군도다. 여기에서 이들 ‘폴리네시아인’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곳은 ‘폴리네시아인의 요람’이라고도 불린다. 시계를 좀 더 뒤로 돌려 보자. 원래 이들의 조상은 또 어디에 있다가 사모아·통가 군도로 흘러들어온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동아시아의 대만에서 시작된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긴 여정을 살펴봐야 한다.
사실 오스트로네시아인의 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장강(양쯔강) 하류에 이른다. 이곳의 벼농경민들이 해안을 따라 남하한 뒤 타이완 해협을 건너 대만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이후 약 6000~5000년 전, 대만의 오스트로네시아 농경민들은 드디어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거쳐 남태평양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뉴기니 북동쪽 비스마르크 제도에서 독특한 라피타 문화를 꽃피웠다. 정교한 기하학 무늬를 찍은 라피타 토기는 오늘날 이들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이다. 이들은 선체 한쪽이나 양쪽에 긴 지지대를 단 아웃트리거 카누를 이용해 먼바다를 안전하게 항해했다. 나침반도 없던 시대에 별·해류·바람을 읽으며 태평양을 건넌 이들의 항해술은 인류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업적이다.
지속적으로 남진하던 라피타 문화 사람들은 기원전 1000~800년경 마침내 사모아와 통가에 도착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곳에서 동쪽으로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약 1700년 동안 사모아와 통가에 머물며 인구를 늘리고 사회를 발전시켰다. 고고학자들은 이를 ‘긴 정체(Long Pause)’라고 부른다. 그리고 기원후 800년경, 즉 중세온난기가 시작될 때 이들은 다시 동쪽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는 태평양을 누빈 폴리네시아 항해자들의 용기와 도전 정신을 아름답게 그려 낸 작품이다. 주제곡도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에서 모아나의 할머니는 손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말 우리 조상들이 산호초 안에서만 살았다고 생각하니?” 할머니는 이 한마디로 ‘우리는 원래 바다를 건너던 민족이었다’는 사실을 모아나에게 일깨워 준다. 모아나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부족 사람들과 함께 아웃트리거 카누를 타고 망망대해로 떠난다. 자신들이 원래 대양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무리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허구가 섞인 창작물이긴 하지만 이 영화 속 이야기는 실제 폴리네시아인의 역사와 닮은 데가 많다. 앞에서 언급한 ‘긴 정체’를 생각해 보라.
이들은 사모아와 통가에 도착한 후 왜 항해자라는 정체성을 버렸던 것일까. 그리고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왜 갑자기 다시 항해를 시작한 것일까. 과거에는 더 먼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기술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는 설명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모아와 통가가 농경과 정착에 유리한 환경이었던 데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후 오랜 정착 생활에 따른 인구 증가 그리고 전반적인 기후 변화로 식량 압박이 커지자 다시 망망대해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 서기 800년경부터 적도태평양의 평균 기후가 라니냐형에서 엘니뇨형으로 변하면서 사모아와 통가를 비롯한 서쪽 섬들에서는 장기간 건조한 기후가 이어졌고 극단적인 가뭄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이런 상황을 은유하듯 ‘모아나’ 영화 초반부에도 섬에서 물고기가 사라지고 코코넛이 썩으며 농작물이 시드는 등 이상 징후들이 나타난다. 반대로 쿡 제도와 타히티 등 동쪽의 섬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비가 내려 정착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식량과 물 부족에 시달리던 서쪽 섬의 사람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새로운 땅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된 이동 방향은 물 걱정을 덜 수 있는 동쪽이었다. 마침 엘니뇨 현상의 강화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도 약해졌기에 이전에 비해 항해 위험도 줄었다. 앞날은 여전히 불확실했지만 그대로 머무는 것보다 떠나는 편이 더 나았다.
물론 기후 변화만으로 이들의 이동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항해 기술의 발전과 인구 증가도 함께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만 중세온난기의 기후 변화가 서쪽 섬의 생산성을 떨어뜨려 주민들을 바깥으로 떠밀었고 동시에 동방의 섬을 풍요롭게 만들면서 서쪽 사람들을 끌어당겼다는 가설은 고고학 유적 자료와 기후변화 자료를 비교해서 얻은 결론으로 설득력이 있다.
높이 3m, 몸무게 500㎏ ‘코끼리새’도 멸종
그리하여 다시 항해를 시작한 이들은 동진을 거듭하다 앞서 설명한 태평양 동쪽 끝의 이스터 섬까지 진출했다. 그뿐 아니다. 저 멀리 위치한 북쪽의 하와이와 남쪽의 뉴질랜드로도 들어갔다. 이 정도면 대만에서 출발하여 사모아 및 통가까지 진출한 오스트로네시아 조상들의 위업을 뛰어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오스트로네시아인의 도전은 동쪽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도 활동 범위를 넓혔다. 일부 집단은 계절풍을 이용해 인도양을 횡단했고 마침내 서기 6~7세기경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마다가스카르에 정착했다. 믿기 힘들지만 마다가스카르의 공용어인 말라가시어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남동부의 언어는 언어학적으로 매우 가깝다.
뉴질랜드에서 15세기에 멸종한 모아새를 20세기 초에 모형으로 복원했다. [사진 위키미디어]
이들은 또한 농경과 목축을 하며 마다가스카르의 생태계를 크게 변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높이 3m, 몸무게 500㎏이 넘는 ‘코끼리새’가 사냥, 알 채집, 서식지 파괴 등의 영향을 받아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태평양 동쪽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폴리네시아인들이 13세기 무렵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할 때 그곳에는 천적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진화한 날지 못하는 새 ‘모아’가 살고 있었다. 높이 3m를 넘는 모아는 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불과 150~200년 만에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모아를 주된 먹이로 삼던 거대한 맹금류 ‘하스트수리’ 역시 먹이를 잃으면서 함께 멸종했다. 이러한 대형 동물의 멸종은 한 종의 소멸에서 그치지 않는다. 먹이 사슬과 식생 구조까지 연쇄적으로 바꿈으로써 생태계의 회복탄력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오스트로네시아인과 그들의 후손인 폴리네시아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항해 집단이었다. 위험천만한 바다를 건너 새로운 땅을 개척한 그들의 놀라운 이주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의 잠재력과 도전 정신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역사는 인간이 신중함을 잃고 욕심을 부릴 때 생태계가 얼마나 빠르게 무너질 수 있는지도 잘 보여 준다. 건강한 생태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인하다. 그러나 한번 균형이 무너진 생태계는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며 아예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스트로네시아인의 위대한 항해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 준 역사다. 또한 자연과의 공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역사이기도 하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UC 버클리에서 생물지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 저서로 『기후로 보는 한국사』 『한국인의 기원』 『기후의 힘』 『인간의 시대에 오신 것을 애도합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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