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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입니다

2026. 08. 16. 오후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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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퍼들의 성지, 일명 surf city로 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헌팅턴비치.

여느 서퍼들처럼 자신의 키만 한 보드를 들고 이곳을 찾은 한 청년이 있습니다.

정성스레 보드를 손질하고, 스트레칭도 허투루 하지 않습니다.

거친 태평양 바다에 몸을 맡긴 채 거침없이 나아가고, 신중히 기다리다 드디어 원하던 파도를 만났습니다.

파도와 하나가 된 순간 그 누구보다 가볍고 화려한 기술로 시선을 압도합니다.

급격한 회전으로 아름다운 물보라를 퍼뜨리는 '카빙'.

파도가 만들어낸 터널을 헤쳐 나가는 최고난위 기술 '배럴', 그중에서도 가장 자신 있는 건 파도 위에서 점프해 회전하는 '에어리얼'.

"항상 파도가 다르게 오니까 예측할 수 없는 재미가 가장 서핑의 매력인 것 같아요."

"카노아는 하와이어로 '자유'를 뜻하고요. 어 희재는 한국어로 '기쁨이 있다'고 뜻해요."

그는 필리핀계 캐나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캐나다 패들보드 선수였던 아버지는 카노아가 4살일 때부터 보드에 태우고 함께 파도를 즐겼습니다.

[멜빈 팔미아노/카노아 희재 아버지]

"우린 항상 해변에 있었어요. 카노아가 어릴 때부터 늘 물속에 있었죠. 그래서 카노아가 어릴 때 제 보드에도 올려주고 했는데 그냥 가족끼리 하는 일상 같은 거였어요."

그리고 15살의 나이에 한국 서핑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가 됐습니다.

카노아의 이름을 널리 알린 건 지난해 인도에서 열린 아시안 서핑 챔피언십.

[현지 중계진 (2025 아시안 서핑 챔피언십, 2025년 8월 10일)]

"이번 턴에서 서퍼가 거의 뒤집힐 정도로 매우 날카로운 턴을 선보이고 있는데 본인도 완전히 즐기고 있습니다."

남자 오픈부와 주니어부를 제패하며 대회 최초로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아시안 서핑 챔피언십 우승자, 카노아! 대한민국 국기를 높이 들어 올립니다. 정말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대한민국 서핑 역사상 국제 대회에서 따낸 첫 메달이었습니다.

"전 지금 숨도 못 쉴 정도로 행복해요. 저를 응원해 주시고 서포트해 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리고…"

카노아는 지금도 우승과 함께 태극기를 펼쳐 들었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더 기분이 좋을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 행복했어요."

이제 대체 불가한 대한민국 국가대표이지만, 사실 카노아는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 또는 필리핀의 국가대표가 될 수도 있었고 아버지도 그러길 바랐습니다.

[멜빈 팔미아노/카노아 희재 아버지]

"사실 카노아가 어렸을 때 캐나다 감독과 필리핀 코치 모두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어요. 당시에는 한국이 유소년 선수 육성에 있어서 그런 체계나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고 캐나다는 코칭 시스템이 좋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한국 대표팀을 선택하면 병역의무도 부담해야 했습니다.

[멜빈 팔미아노/카노아 희재 아버지]

"카노아가 한국 대표로 뛰겠다는 건 병역 의무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하지만 카노아의 선택은 확고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계속 살아왔다 보니까 한국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국 국적을 선택했어요."

비인기 종목이라 후원을 받기도 어렵다 보니, 해외 전지 훈련비는 물론 경기 출전비까지 자비로 부담해야 했습니다.

후원업체 역시 초기엔 카노아란 낯선 이름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름도 약간 외국인 같고 이러니까 '이 친구 과연 한국 아이가 맞느냐', '우리가 한국 아이를 도와주는 게 맞지 않느냐' 이런 의견들도 저한테 많이 오셨고."

하지만 아들을 위해 직장도 내려놓은 아버지와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의 헌신 덕에 카노아는 꿋꿋하게 훈련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힘을 준 소중한 인연.

세계적인 서핑 선수이자 한국에 서핑을 들여온 필립 안 커디입니다.

"반갑다. 무사히 잘 와서 다행이구나."

그는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외손자입니다.

카노아가 미국 현지 훈련을 올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필립 안 커디/도산 안창호 선생 외손자·전 서핑 선수]

"국적을 선택한다는 건, 자신이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느냐의 문제인 거죠. 저도 한국계이자 아일랜드계 미국인이고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은 제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그는 카노아가 대한민국 국위선양에 크게 기여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필립 안 커디/도산 안창호 선생 외손자·전 서핑 선수]

"저는 카노아가 자신의 뿌리는 한국에 있다고 느끼는 걸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이건 한국에게도 좋은 일이에요. 한국도 한국 서핑의 전체적인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니까요."

서핑은 다음 달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습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초대 챔피언에 오르는 그 꿈을 위해, 카노아는 오늘도 푸른 파도를 가릅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따는 게 가장 큰 목표고, 저는 대한민국의 서핑을 알리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육상 국가대표 선수들의 계주 훈련이 한창인 진천 선수촌.

평상시엔 장난도 잘 치고 웃음도 많은 평범한 20대 청년들이지만,

"잘해~ <오 잘해~ 학생 모델 같다> 오~ <잘해~>"

주 종목인 100m 훈련이 시작되자, 눈빛이 싹 바뀝니다.

먼저 두각을 보인 건 비웨사였습니다.

그는 콩고 출신 부모님이 한국으로 건너온 뒤 경기도 안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실업팀 지도자들이 눈여겨볼 만큼 육상에 특출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한국 국적이 없었던 터라, 전국체전 등 주요대회엔 출전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보긴 했는데, 국적을 못 따서 이제 운동을 천천히… 전문적으로 할 수는 없었죠."

자신을 바라보는 편견에 찬 시선에 움츠러들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겉에 보이니까, 다른 게. 그런 것 때문에 어렸을 때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은데… 그냥 좀 몇 마디 대화해 보면 알 거를…"

비웨사의 미래를 위해 어머니는 10년 넘게 노력한 끝에 귀화 시험을 통과해 한국 국적을 땄습니다.

"타지에 와서 거의 십몇 년 가까이 일하시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그러면서 국적 따고 하는 게. 저였으면 못할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 귀화한 비웨사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지 1년 반 만에 국내 정상급 선수로 급성장했습니다.

그런 비웨사를 롤모델로 삼고 꿈을 키웠다는 조엘진.

[나마디 조엘진 (2022년 5월 11일)]

"비웨사 형처럼 저만의 타고난 기술을 익혀서 나중에 국가대표로 나가는 게 (꿈이에요.)"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아역 배우로 등장하기도 했던 조엘진은 이제 명실상부한 한국 단거리 육상의 대표 주자입니다.

지난해 세계유니버시아드대회 400m 계주에서 월등한 실력으로 대한민국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습니다.

[현지 중계 (2025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2025년 7월 27일)]

"대한민국이 남아공을 제치고 1위로 올라갔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열린 대회 기록은 10초 07, 비공인이었지만 기존 한국최고기록과 똑같았습니다.

조엘진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부상에 시달렸던 비웨사는 이제 조엘진이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말합니다.

"<(조엘진을) 휴대전화 배경사진으로 해놨었다고 하시던데요?> 맞습니다. 맞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오히려 엘진이가 제 롤 모델이었죠. 제가 못 한 걸 하고 있었으니까요."

지난 5월, 조엘진과 비웨사는 나란히 1, 2위로 육상 국가대표에 선발됐습니다.

100m 공식 기록은 둘 다 10초 13.

한국 기록 보유자이자, 지난 10여 간 100m 일인자 자리를 지켰던 육상 대표팀 김국영 코치는 두 선수가 한국 신기록은 물론, 본인도 끝내 허물지 못했던 10초의 벽을 깨고 9초대 기록을 세워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김국영/전 육상 국가대표·여자 육상 국가대표팀 코치]

"제 기록은 언젠가 깨져요. '10초 07'이라는 기록은 뭐 빠르면 올해가 될 수도 있고, 내년이 될 수도 있고. 후배들이 기왕 깨는 거 9초대 기록으로 깨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두 선수는 이번 아시안게임 400m 계주에선 2번 주자와 4번 앵커로 힘을 합하고, 100m에선 불꽃 튀는 경쟁자로 만납니다.

"기왕이면 그래도 제가 1등하고 싶습니다. <저도 1등하고 싶습니다.>"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라이벌로, 취약했던 대한민국 육상의 비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 한국프로농구에 혜성처럼 등장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전태풍 선수.

국가대표를 꿈꾸며 어머니의 나라 한국 땅을 밟았지만, 결국 꿈을 이루진 못했습니다.

"진짜 '우리나라 농구 제대로 보여줄게' 약간 대표 느낌, 진짜 대표 사람처럼 하고 싶었어요. 농구 쪽에서."

자신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과 이해하기 어려운 차별도 겪어야 했습니다.

"걸어갔을 때 막 옆에 사람들 이상한 표정 '어 이 사람 여기 왜 있어?' 약간 그런 느낌. (당시 규정이) 한 팀에서 3년 동안만 뛸 수 있고 3년 지나가면서 이제 혼혈 아니 다문화 없는 팀에 무조건 가야 된대요. 제가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요. 그 룰 듣고. 그리고 계속 사람들한테 물어봤어요. '야 이거 차별 아니야? 차별 아니야?' 다들 어떻게 하는 줄 알아요? '태풍아, 여기 미국 아니야 한국이야'"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때 어떤 느낌을 알아서 확실히 아, 우리나라 많이 변했다. 그리고 나도 에디 다니엘이랑 뭐 다른 꼬맹이들을 좀 알아서 그냥 물어봐요. '요새 어때?' 뭐 (차별) 전혀 없대."

아프리카계 영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이번 아시안게임 농구 국가대표에 선발된 19살 막내입니다.

지난 3월, 한일전 경기에서 패한 뒤 뜨거운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한테 국가대표는 항상 제 가장 큰 꿈이었고, 국가대표로서의 지금 자부심이 너무 크고. 한일전은 좀 그래도 절대 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항상 경기를 하고 있고."

지난 북중미 월드컵에서 출생국이 아닌 나라에서 국가대표로 뛴 선수는 전체의 4분의 1에 달했습니다.

이제 출생지나 혈통을 국가대표의 조건으로 삼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입니다.

가까운 일본도 다양한 종목에서 적극적으로 외국 출생 선수들을 영입해 국가대표 전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보다는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통용되는 '혼혈', '다문화' 같은 단어들이 선수들에게 상처가 될 때가 있다고 합니다.

"뭐 이름이 다르다, 외모가 조금 다르다고 해서 '어? 우리나라 선수가 아니네?'라고 느끼시는 분들은 아마 거의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이제 그 '다문화'라는 단어 있잖아요. 그걸 안 써야 되는 시기가 오지 않았나라고 생각이 들어요."

외국인 선수의 귀화 장벽도 여전히 높습니다.

지난 2011년 이후 15년간 대한체육회의 추천으로 28명이 우리 국적을 취득했는데, 세계 주요 국가와 비교해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옛날부터 되게 단일 민족에 대한 그런 것들이 있었고, 많이 그렇게 돼 있었는데 세상에 혼혈이 어디 있습니까? 다 사람이니까 저는 그런 거 없고요. 그냥 뭐 누가 뛰든, 누가 어떤 성적을 거두든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있다면 누구라도 한국 사람이지 않나…"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도, 고강도 체력 훈련에 한창인 한 실업 럭비팀.

숨 쉬기는 것조차 버겁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전술 훈련.

이모시는 이 팀에서 없어선 안 될 핵심 선수입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일단 인성부터 좀 잘 갖춰진 선수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팀에서 퍼포먼스적인 그런 훈련을 할 때 제일 잘하는 친구라고 생각해서…"

지난 2019년, 이모시는 16살의 나이에 럭비 강국 피지에서 한국 고등학교 팀으로 스카웃됐습니다.

"네가 한국에서 럭비선수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건, 엄청난 기회였어. 최선을 다하길 바라."

가족을 위해 한국에서 꼭 성공하리라 다짐했던 그는, 지난해 럭비 국가대표가 됐습니다.

국제 럭비연맹은 그 나라 국적이 아니어도 대표선수로 뛸 수 있도록 하고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모시 라바티/현대글로비스 럭비팀 선수]

"많이 행복했어요. 다른 나라에서 대표팀 돼서 저희 부모님 많이, 많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럭비연맹 주최가 아닌 아시안게임에선 한국 국적이 아닌 이모시는 태극 마크를 달 수 없습니다.

"만약에 이모시가 좀 좋은 상황이 돼서 귀화가 된다면 저희 팀이나 대표팀에 너무 도움이 될 선수라고 생각이 듭니다."

K-POP에 푹 빠진 이모시는 짬 날 때마다 귀화를 위한 공부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모시 라바티/현대글로비스 럭비팀 선수]

"역사만 많이 들어요. 역사가 많이 어려워요."

반드시 귀화 시험을 통과해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는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모시 라바티/현대글로비스 럭비팀 선수]

"럭비선수로서 저의 가능성을 끝까지 펼치고, 은퇴한 후에는 한국 럭비의 다음 세대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찾아서, 또 한국이 좋아서 각고의 노력 끝에, 꿈에 그리던 태극 마크를 단 선수들…

"스포츠는 국경이 없잖아요. 또 스포츠는 언어가 없거든요. 왜냐하면 스포츠가 하나의 언어예요.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고 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지만 '완전히 뼛속까지 우리 선수는 아니야'란 인식보다는 함께 품어가는 인식이 좀 제고가 돼야…"

편견의 벽을 허물고, 온 국민이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낼 때, 이들은 대한민국 국가대표로서 더 빠르게, 더 힘차게 달려 나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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